[기자의 눈]최영해/못믿을 금융팀

  • 입력 2000년 12월 18일 19시 15분


“금고가 문을 닫아도 영업정지 후 보름 내에 2000만원까지 주도록 하겠다.”(12월 12일·이종구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영업정지 후 5일 뒤에 500만원은 주지만 2000만원까지 주려면 적어도 2개월은 기다려야 한다.”(12월 14일·팽동준 예금보험공사 이사)

“공적자금이 들어간 한빛 외환 조흥은행에 감자는 하지 않는다. 필요하면 후순위채를 인수하면 된다.”(5월 23일·이헌재 당시 재경부장관) “한빛 서울 평화 광주 제주 경남 등 공적자금이 들어간 6개 은행의 기존주식을 모두 무상소각해 완전감자한다.”(12월 17일·금융감독원 이종호 은행감독국장)

“상장회사나 코스닥기업들이 이사회 결의만으로 자사주 소각을 쉽게 하도록 하겠다.”(11월 1일·임종룡 재경부 증권제도과장) “증권거래법에 따라 취득한 자사주를 상법규정에 따라 사들인 것으로 간주해 소각하면 안 된다.”(12월 14일·윤승한 금감원 공시심사실장)

위의 사례들을 보면 ‘양치기소년’ 우화가 연상된다. 금융정책을 맡은 핵심관료들이 너무나 말을 쉽게 하는 것이다. ‘그게 아니다’며 산하기관에서 바로 뒤집어버린다.

이런 말들은 재경부 기자실에서 공식 설명된 뒤 얼마 안 있다가 금감원 기자실에서, 또 재경부 기자실에서 뒤집어진 것이다.

증시부양을 위해 사정이 급하다보니, 또 불안해하는 금고고객들을 진정시키려 하다보니, 은행투자자들에게 불필요한 불안감을 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런 말들을 쉽게 쏟아냈을까.

이런 사안들은 국민의 손해로 바로 이어진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자사주를 소각한다는 얘기를 듣고 주식을 산 사람과, 안심하고 금고를 찾았던 상인들이나, ‘코 묻은 돈’으로 은행주를 산 주부들이 정부의 이런 말에 손해를 봤다.

일이 잘 안 풀리는 것 같다는 정부의 조급증이 이런 말을 앞서게 했을까. 기자도 정부 말을 그대로 옮겨 적어야 할지 두려울 따름이다.

최영해<경제부>money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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