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생명의 빛' 쫓는 과학자들

  • 입력 2000년 12월 15일 19시 13분


맹농아(盲聾啞)의 삼중고를 딛고도 유명한 강연가와 저술가로 이름을 날린 헬렌 켈러에게 맹농아의 고통 중 어느 것이 가장 안타까운가 물었더니 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한다. 물론 그는 “주님이 대신 내게 영혼의 눈을 주셨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의 영혼조차도 귀나 입보다 눈을 택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생겨났다는 이 우주에 진정 빛처럼 중요한 것 이 어디 또 있을까? 지구생태계의 모든 에너지는 다 태양으로부터 오는 빛에너지에서 생겨난다. 그 빛에너지가 식물의 광합성 작용에 의해 화학에너지로 변한 후 먹이사슬을 타고 궁극적으로는 우리 몸에까지 이른다. 빛이 미치지 못하는 행성에 과연 생명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

‘빛의 역사’는 빛의 과학적 특성을 어둠으로부터 건져 올린 역사의 현장들과 그 일을 해낸 과학자들의 여정을 환히 비춰준다. 자칫 딱딱할 수 있는 물리학 얘기를 저자는 인문학 냄새가 물씬 묻어나도록 참으로 감칠 맛 있게 풀어냈다. 그런가 하면 과학적 깊이에도 전혀 손색이 없다. 독자의 흥미는 놓치지 말아야 하지만 과학정보를 알리는 일 역시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것이 과학책을 쓰는 어려움인데 이 책은 그 두 마리 토끼를 훌륭하게 쫓았다. 대중을 위한 과학책이 어떠해야 한다는 전형을 보여주는 듯하다.

빛은 입자로 이뤄져 있으면서 동시에 파동성을 띤다. 언뜻 보면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특성을 밝혀나가는 역사는 과학사에서 매우 흥미로운 과정이다. 이 외에도 이 책에는 16세기 광학으로부터 20세기 양자역학에 이르기까지 물리학의 기원과 발전이 소상하게 밝혀져 있다. 사진의 원리와 기술에 대한 역사적 조명은 특별히 밝아 보인다.

인간은 청각 못지 않게 시각에 의존하는 동물이다. 우리는 자연계의 그 누구보다도 고도로 발달한 언어를 사용하는 동물이지만 인식과정의 절대적인 부분을 시각정보로 시작한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그렇게 변하는 것 같다. TV가 라디오의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앉더니 요즘은 아예 노래도 듣는 게 아니라 보는 것 같다. 점점 더 많은 정보가 책이 아니라 화면을 통해 전달되고 있다. 인터넷에 의한 ‘빛의 경제’가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 한다.

빛은 이제 21세기를 맞아 바야흐로 그 전성기를 누릴 참이다. 걸어온 발자취를 돌이켜 비춰보고 그 역사가 이제 우리 곁에 어떤 파장으로 밀려올 지 측정해볼 일이다.

▽리차드 바이스 지음/김옥수 옮김/328쪽 1만원/이끌리오▽

최재천(서울대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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