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민병욱/권력과 언론

  • 입력 2000년 12월 14일 19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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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제퍼슨은 자유언론을 열렬히 지지했던 미국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인 1787년 친구에게 보낸 편지의 한 문장은 지금도 언론자유의 경전처럼 전해진다. ‘만약 나더러 신문 없는 정부와 정부 없는 신문 중 어떤 것을 택할지 결정하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할 것이다.’ 교과서에도 실린 그의 이 글은 워낙 매력적이어서 미국의 많은 신문사들이 액자에 담아 벽에 걸어두고 있다고 한다.

▷그럼 제퍼슨은 대통령이 되어서도 끝까지 그런 정신으로 언론을 옹호했을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인을 비난하며 감옥에 집어넣어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대통령이 된 뒤 자신의 정책에 대해 신문들이 통렬한 비판을 해대자 이런 글까지 썼다. ‘국민이 신문에 실리는 것은 믿을 게 없다고 한다. 신문은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우리가 법을 엄격히 적용하면 신뢰가 회복될 것이다. 두드러진 위반자들을 의법처리하면 언론이 본래 모습을 되찾을 것이다.’

▷권력과 언론의 관계를 얘기할 때 자주 인용되는 에피소드다. 이론적으로, 아니 그보다 더한 신념적으로 언론자유를 부르짖는 사람들마저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에는 적대감을 느끼고 심한 경우 말살시키려 한다는 것은 사실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때문에 한 나라에 언론자유가 있느냐, 없느냐는 그 나라가 민주주의를 하느냐, 안 하느냐를 가르는 중요한 척도로 작용한다. 실제 언론 통제를 하지 않고 할말을 다하게 내버려둔 독재자는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았다.

▷한나라당이 이회창(李會昌)총재의 대선 승리를 위해 작성한 문건이 엊그제 공개됐다. 정치상대의 약점을 적극 캐 활용하라는 네거티브 전략구사를 제안한 것도 그렇지만 언론대책이라고 적시한 부분은 혐오감마저 느끼게 한다. ‘적대적 논설 집필진의 비리 등 문제점 자료를 축적하고 우호 언론그룹은 조직화하라’는 권고는 협박과 당근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언론을 주무르라는 얘기와 다름없다. 언론자유를 외치다가도 정권을 잡으면 표변하기 쉬운데 벌써부터 언론공작을 기획하고 있으니 참 한심스러운 일이다.

<민병욱논설위원>min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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