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충식/‘휴대전화’ ‘윤화’로 본 한국

  • 입력 2000년 12월 11일 18시 35분


전화가 이땅에 선보일 때의 이름은 덕률풍(德律風)이라는 이상한 것이었다. 그리스어의 ‘멀다(tele)’와 ‘소리(phone)’가 합쳐져 생긴 영어 ‘텔레폰’을 그렇게 취음한 듯하다. 1898년 궁중의 통신 연락수단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전화는 5년 뒤 부산에서도 통화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가설비는 비싸고 보급은 느렸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전화는 여느 나라에서처럼 극소수층의 전유물일 뿐이었다. 피아노나 자동차와 함께 다들 부러워하는 물건이 전화였다.

▷80년대 전(全)전자 교환기(TDX) 개발과 성공은 눈부신 통신혁명으로 이어졌다. 전화 보급률과 통화품질은 선진국을 능가하기에 이르렀다. 이어 90년대 이동전화(휴대전화) 및 인터넷 시대가 열리자 한국은 또 한번의 멋진 비상(飛翔)을 보여주었다. 99년말 휴대전화 가입자가 100명 가운데 50명으로 일본(44.9명)을 제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들 가운데 7위였다. 미국 프랑스보다 앞선 가입률이다. 인터넷 이용자 비율도 일본 영국을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도 전화와 비슷한 시기에 들어왔다. 고종(高宗)이 쓰던 전화기(에릭슨 제품)와 자동차(캐딜락4기통) 사진이 바로 그 증빙이다. 개화이래 반세기는 그저 수입차밖에 없었다. 해방 후 전란기를 거치면서 중고수리 조립 기술이 생산으로 발전해 현대 기아 대우에서 차를 만들고 수출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70년 이 나라에 등록된 차가 모두 12만6000여대였던 것이 지금은 인구 100명당 23대, 넷 중 한사람이 차를 갖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경악할 만한 것은 교통사고 사망률이다. OECD 나라 가운데 한국의 인구 100만명당 윤화(輪禍)사망자 수가 195명으로 세계 2위다. 1위는 그리스(210명). 아직도 자동차 생산은 한해 284만대로 미국 일본을 따라잡기는커녕 세계 7위에 불과하지만 차사고로 인한 희생자수가 세계 톱 수준이라는 데 부끄러움이 앞서는 것이다. 휴대전화를 들고 으스대는 한국인. 윤화 사망 또한 세계 ‘버금’이라는 일그러진 자화상을 떨칠 길은 없을까.

<김충식논설위원>seesch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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