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판을 날아오르는 철새들의 날갯짓과 울음소리. 깃털의 수많은 색과 아름다운 소리가 조화를 이룰 그 모습을 눈감고 그려보기만 해도 머리가 맑아지는 듯하다. 계절 따라 삶의 터전을 바꾸는 철새들의 생존 본능에서 자연의 위대한 섭리와 질서를 배울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도시 사람이 한가롭게 해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겨울철 우리나라를 찾는 100여종 70여만 마리의 새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사람도 적지 않으니 말이다.
▷최근 철새들이 몰려드는 강원 철원평야의 주민과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 인근주민은 수만평의 논을 갈아엎는 시위를 했다. 새들의 먹이가 되는 가을걷이 때 떨어진 낟알을 없애 새들의 서식이나 도래를 막겠다는 뜻이다. 철원 주민은 조류 보호지역의 확대가 생활에 불편을 준다며 실력행사를 했다. 주남저수지 인근주민은 새 때문에 보리를 심을 수 없다고 했다. 뿐만 아니다. 전남 순천만 일대의 어민들은 양식장 피해를 막기 위해 새를 쫓을 총기의 사용을 요구하고 있다. 모두 생존권을 이유로 들고 있다.
▷농민과 어민은 정말 겨울철새가 싫어서 그런 일을 했을까. 주민들의 주장으로 봐서는 정부의 철새보호정책에 대한 반발로 여겨진다. 천연기념물 또는 철새 보호지역으로 지정되면 비료 사용이 제한되는 등 농작물 수확량감소나 개발제한 같은 불편이 따르는데 그에 상응하는 보상은 미미한 게 사실이다. 정부나 주민의 입장은 이해할 수 있지만 철새를 둘러싼 정부와 도래지 주민의 마찰은 어쩐지 안쓰럽다. 자원봉사단을 만들어 철새 먹이를 주며 철새 도래지를 관광지로 만드는 이웃 일본 도시의 예도 아른거린다. 철새가 우리를 외면한다면 그건 누구의 책임일까.
<윤득헌논설위원>dh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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