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윤득헌/철새의 마음

  • 입력 2000년 12월 7일 18시 30분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신문에 큼직하게 실리는 사진이 있다. ‘화려한 군무(群舞)’ ‘비상(飛翔)’등의 제목에 어울리게 겨울철새들이 하늘을 수놓는 장면이다. 사진을 보는 독자의 느낌은 나름대로 다를 것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상념에 젖을 법하다. 그리고 ‘겨울철의 색다른 경험’이라는 탐조여행에 나서거나 철새 먹이주기 행사에 동참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 터이다.

▷벌판을 날아오르는 철새들의 날갯짓과 울음소리. 깃털의 수많은 색과 아름다운 소리가 조화를 이룰 그 모습을 눈감고 그려보기만 해도 머리가 맑아지는 듯하다. 계절 따라 삶의 터전을 바꾸는 철새들의 생존 본능에서 자연의 위대한 섭리와 질서를 배울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도시 사람이 한가롭게 해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겨울철 우리나라를 찾는 100여종 70여만 마리의 새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사람도 적지 않으니 말이다.

▷최근 철새들이 몰려드는 강원 철원평야의 주민과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 인근주민은 수만평의 논을 갈아엎는 시위를 했다. 새들의 먹이가 되는 가을걷이 때 떨어진 낟알을 없애 새들의 서식이나 도래를 막겠다는 뜻이다. 철원 주민은 조류 보호지역의 확대가 생활에 불편을 준다며 실력행사를 했다. 주남저수지 인근주민은 새 때문에 보리를 심을 수 없다고 했다. 뿐만 아니다. 전남 순천만 일대의 어민들은 양식장 피해를 막기 위해 새를 쫓을 총기의 사용을 요구하고 있다. 모두 생존권을 이유로 들고 있다.

▷농민과 어민은 정말 겨울철새가 싫어서 그런 일을 했을까. 주민들의 주장으로 봐서는 정부의 철새보호정책에 대한 반발로 여겨진다. 천연기념물 또는 철새 보호지역으로 지정되면 비료 사용이 제한되는 등 농작물 수확량감소나 개발제한 같은 불편이 따르는데 그에 상응하는 보상은 미미한 게 사실이다. 정부나 주민의 입장은 이해할 수 있지만 철새를 둘러싼 정부와 도래지 주민의 마찰은 어쩐지 안쓰럽다. 자원봉사단을 만들어 철새 먹이를 주며 철새 도래지를 관광지로 만드는 이웃 일본 도시의 예도 아른거린다. 철새가 우리를 외면한다면 그건 누구의 책임일까.

<윤득헌논설위원>dh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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