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증권가 말… 말… 말… "본심은 딴곳에…"

  • 입력 2000년 11월 16일 18시 39분


3·4분기 어닝시즌(earnings season)인 10월 중순 미국 증권가에서는 언뜻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 반복됐다.

실적이 예상치를 밑돈 일부 기술주들의 투자등급이 ‘강력매수’에서 ‘매수’로 강등되자 투자자들의 대량매도 공세로 주가가 10% 이상 폭락하는 경우가 빈발한 것.

강력매수든 매수든 어차피 ‘사는 게 좋다’는 말인데도 투자자들이 이렇게 과잉반응하는 배경은 뭘까.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 14일자에 실린 ‘월가의 말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기사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증권가에서 쓰이는 의례적이고 외교적인 표현의 진짜 의미를 정확히 짚고 행동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그 주식이 장기적으로 매력적이라고 본다’는 말의 진짜 의미는 ‘내년은 그 기업으로서는 매우 힘든 시기가 될 것이다’는 것. ‘우리는 그 주식에 대해 유보(HOLD)를 추천한다’는 말은 ‘제발 그 주식을 내팽개치시오’라는 뜻이다.

스트래티지스트(투자전략가)들이나 애널리스트(업종분석가)들이 점잖은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뭘까.

국내 증권사의 한 스트래티지스트는 “밥줄이 달려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에 한번 모 회사 주식에 대해 매도 의견을 냈다가 회사측과 이 회사 주식을 갖고 있던 투자자들한테 한 달간 곤욕을 치렀다”고 털어놓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이 풀어낸 증권가의 겉다르고 속다른 말들을 소개한다.

▽그 주식의 주가는 적정수준이다〓주가가 몇 달러만 더 오르면 그 주식을 팔아치우겠다.

▽우리는 장기투자자들이다〓주가는 빠지고 있다. 그러나 우린 아직 주식을 움켜쥐고 있다. ‘언젠가는 원본을 찾겠지’하고 기대하면서….

▽시장이 기관투자가들의 매도공세로 떨어졌다〓주가가 왜 떨어졌는지 솔직히 모르겠다.

▽매수호기다〓우리는 수수료수입이 필요하다

▽이 주식은 상대적으로 저평가돼 있다〓이 주식의 가격은 매우 비싸다. 하지만 이보다 더 비싼 주식을 가지고 있는 투자자들도 있다.

▽이 주식은 과매도상태다〓이 정도로 주가가 떨어지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그것은 신경제(New Economy)주식이다〓그 주식의 수익전망에 대해 자꾸 묻지 말라. 귀찮다.

▽펀더멘털을 중시하라〓우리는 매출액이 급증하고 있다는 사장님의 말을 믿는다.

▽우리는 그 기업의 경영진을 높이 평가한다〓우린 그와 골프를 많이 쳤다.

▽(펀드의) 총수익에 초점을 맞춰라〓제발, 제발 펀드에 지불해야 하는 높은 비용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달라.

▽그 회사는 펀더멘털이 튼튼하다〓그 주식이 그 정도로 터무니없이 과대평가됐다.

▽우리는 단기적으로 조심스런 관망, 장기적으로는 낙관하는 입장이다〓주가가 떨어져도 우리에게 뭐라고 하지 말라.

<이철용기자>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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