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현대건설 왜 이지경됐나… 최고경영진 '방심'이 위기 키

  • 입력 2000년 11월 8일 18시 58분


현대건설 직원들은 50여년간 적자를 거의 낸 적이 없는 회사가 어떻게 부도위기에 처하게 됐는지 미스터리 라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그 해답으로 건설업 불황, 이라크로부터 못 받은 9000억원,서산농장 등 과도한 무수익 자산, 그룹의 지주회사로서의 지나친 계열사 지원 등 대략 4가지로 지적한다.

그러나 가장 치명적인 원인 하나만을 고른다면 이라는 질문에 대다수 전문가들은 올 3월 왕자의 난 에 따른 후유증으로 그룹의 핵심경영진이 흔들리면서 경영공백이 생겼기 때문 이라고 잘라 말한다. 결국 위기관리에 실패한 데 원인이 있다.

▽위기관리의 실패=IMF 외환위기 때 회사채나 기업어음(CP)이 과도하게 발행됐다. 이 때문에 올해말에 갚을 날짜가 한꺼번에 몰려온다.따라서 현금을 마련하고 빚을 줄여야 한다는 사실은 현대건설 간부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현대의 한 고위 임원은 현대경제연구원과 구조조정본부의 작업을 통해 닥쳐올 문제와 처방까지 모두 제시됐고 최고 경영자는 이를 실천만 하면 됐다 며 매출 7조원에 8000억원의 매출이익, 총자산 9조원, 현대건설의 신뢰도 등을 감안할 때 충분히 극복할 수 있었다 고 밝혔다.

그러나 최고 경영자들은 파도가 밀려오는데도 팔짱을 끼고 앉았다. 현대 내부에서조차 정몽헌(鄭夢憲)회장이 3개월전에 지금처럼 발벗고 나섰다면 이 지경까지 가지는 않았다 는 분석이 지배적. 정회장은 현대건설이 벼랑끝에 매달린 순간까지 해외에서 머물며 전화로만 보고를 받을 정도로 상황인식이 안이했다.

이와 관련, 편향된 시각을 가진 특정인의 조언에 의존한 탓 이라는 분석이 현대 내부에서나오고 있다. 김재수(金在洙)구조본부장이 오너가 국내에 없는 상태에서 동분서주하며 하루 하루를 버텼지만 역부족이었다.

향영 21C컨설팅의 이정조 사장은 회사의 자금흐름이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면 시장의 예상보다 한 발 앞선 자구책이 중요하다 며 현대건설은 몇차례나 자산매각 타이밍을 놓쳤다 고 지적했다.

▽신뢰의 위기 불러온 왕자의 난=3월 두 형제간에 경영권다툼이 벌어지면서 자금시장은 현대그룹을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계열사간에 갈등이 생겨 그룹이 조기에 분리되면 현금흐름에 이상이 생길 때 계열사간 협조가 어렵지 않느냐고 본 것. 부채가 많은 현대건설이 주목대상이 됐다.

현대측은 시장이 던진 의문부호에 허겁지겁 몇차례 자구안을 내놓았지만 실천하지 못했다. 시장이 계속 보내는 경고신호에도 불구하고 정몽헌 회장은 현대건설을 살리겠다 는 확고한 의지와 신뢰감있는 행동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의심의 단초제공→시장의 의문→현대의 잘못된 대응→의심증폭의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시장은 현대에 등을 돌려버렸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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