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제, '최악에 대비하라'

  • 입력 2000년 10월 18일 18시 37분


경제상황이 심상치 않다. 최근 며칠사이 주가는 외환위기 직후 수준으로까지 떨어졌고 원화가치 하락으로 환율은 계속 오름세를 보이고 있으며 채권가격은 연일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른바 금융관련 3대지표가 모두 불안해지면서 심리적 공황상태까지 연출되는 모습이다.

심지어 제2의 환란까지 예고되는 상황이다 보니 기업들의 움직임도 범상치가 않다. 삼성그룹 사령탑이 전 계열사에 대해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라’고 지시해 현금확보에 나선 것이나 SK그룹이 일부 계열사를 중심으로 비상경영 체제에 들어간 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최근 증시폭락의 한 원인인 현대건설 등 현대계열사들의 자금난은 사태진전 여하에 따라 대우그룹 붕괴에 버금가는 충격을 줄 가능성이 있어 가뜩이나 불안한 국민의 마음을 더욱 심란케 하고 있다. 대북사업의 환상에 빠져 자금사정이 이 지경에 이르도록 내버려 두었다는 비난여론에도 현대경영진은 할 말이 많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이번 경제위기에는 세계 반도체가격 하락이나 국제유가 상승 같은 외적 요인이 큰 작용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97년 환란의 한 원인이 우리 경제의 지나친 반도체의존에 있었다는 분석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이후 똑같은 길을 밟아오면서 스스로 도취해 대책마련에 게을리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경제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지금 정부가 해야할 일은 우선 기업인들의 의욕을 북돋워 주는 일이다. 구조조정이나 부실기업판정을 원칙에 입각해서 신속하게 끝냄으로써 선량한 기업인들의 마음을 서둘러 안정시켜 주어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당초의 약속을 어기고 기업의 은행계좌 추적권을 3년간 더 연장하기로 한 것은 기업의욕을 꺾는 대표적 정책이다. 뭉텅이 달러돈이 해외로 불법유출되는 것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물론 불법으로 외화를 유출하는 행위는 자칫 엄청난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자제되어야 하며 엄격히 처벌되어야 한다.

증시정책은 산발적 부양책보다 경제체질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이뤄져야 한다. 지금 고통스럽다고 대증요법에 의존하면 시장의 정책의존도만 높여 자립체력을 갖기 어렵다는 것은 상식이다.

무엇보다도 확고하게 요구되는 것은 정부 당국자들의 신뢰회복이다. 최근 몇가지 사례에서 정책 책임자들의 말이 오락가락한 것은 큰 잘못이다. 정책은 일관성이 있어야 하고 정부의 목소리는 하나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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