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홍찬선/현대건설 처리 오락가락

  • 입력 2000년 10월 17일 19시 06분


“2차 기업 금융구조조정의 성패는 현대건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달려있다.”

금융감독위원회가 9월22일 2단계 구조조정계획을 발표할 때 내건 출사표는 단순 명쾌했다. 이근영 금감위원장은 “4대재벌 계열사라도 예외는 없다. 다시 대마불사(大馬不死) 시비에 휘말릴 경우 2단계 구조조정은 뿌리부터 흔들린다”고 밝혔다. 당시 시장은 주가상승으로 이런 의지를 환영했다.

그러나 이달 초 진념 재정경제부 장관은 “4대 재벌 계열사의 출자전환은 없다”고 밝혔다. 출자전환이 없다는 건 경영권을 빼앗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금감위의 발표를 부분적으로 부정하는 말이었다. 이 위원장은 서둘러 “채권은행단이 채권회수를 위해 유리하다고 판단할 경우엔 예외적으로 4대 재벌계열사의 출자전환을 허용할 수 있다”는 ‘해명’으로 봉합했다.

금융감독원은 이에 따라 “현대건설에 대한 대주주의 자구노력을 최대한 요구하되 10월말까지 시장이 납득할 만한 대안이 제시되지 않으면 출자전환할 수밖에 없다”(금감원 고위관계자)는 내부방침을 정했다. 그런데…. 진 장관은 16일과 17일 “4대재벌 계열사의 출자전환은 없다”며 시계바늘을 50일 전으로 되돌려놓았다.

금감원은 이에 대해 “진 장관의 말실수” “대주주의 자구노력을 촉구하기 위한 것” “아직 출자전환을 논의할 단계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현대건설 문제는 2단계 구조조정이 제대로 되느냐를 판가름하는 시금석이다. 그런데도 장관과 금감위 및 금감원의 사인이 맞지 않는 모습을 보여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정부가 정한 시한이 2주일도 안남았는데 말이다.

시장과 외국인투자자들은 이미 전후의 사정을 알고 있을 것이다. 구조조정을 맡고 있는 경제관료나 은행장들은 더 이상 말로만 개혁을 선전하는 일을 되풀이해선 안된다. 퇴출기업의 수를 선전하기보다는 현대건설 등 일부 대기업의 퇴출을 결정하는 데 투명성을 보여야 외국인투자자들과 시장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다.

<홍찬선기자>h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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