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근수/회계감사 독립성 확보 급하다

  • 입력 2000년 10월 1일 18시 34분


23조원에 이르는 대우그룹의 분식회계 규모가 밝혀지면서 김우중회장을 비롯한 경영진과 회계감사를 담당했던 공인회계사들이 고발되고 회계법인에 1년간의 업무정지조치가 내려졌다. 포드의 대우자동차 인수포기 결정이 대우의 분식회계 규모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인수대상 기업의 불투명한 회계처리가 인수에 따르는 위험부담을 가중시켰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기업경영의 투명성은 정확한 회계 처리에 의해 담보될 수 있다. 그러나 최고경영자가 회계책임자를 임명하고 중요한 회계정책을 결정하며 모든 장부를 장악하고 있는 경영구조에서 투명한 회계처리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는 것이 대우사태가 주는 교훈이다.

회계감사는 일반 투자자의 편에 서서 경영자에 의해 자행되는 분식회계를 적발하고 방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회적 안전판이다.

감사인을 경영자가 선택하고 교체하며 보수도 감사 대상인 경영자가 결정하는 상황에서 소신있는 감사는 기대할 수 없다. 문제는 대우사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기업이 부실해질 때마다 회계법인이 계속 희생양이 될 것이고 수많은 선의의 투자자와 채권자들이 막대한 손실을 입을 것이라는 데 있다.

사내외 이사들로 구성되는 감사위원회가 추천한 감사인을 주총에서 인준하는 제도나 최근 재정경제부가 제안한 감사인선임위원회제도는 발상부터가 이미 실패한 것이다.

사외이사와 감사, 제2, 제3의 대주주 및 채권금융기관으로 감사인선임위원회가 구성되는 경우를 보자. 사외이사와 감사는 형식상으로는 주총에서 선택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대주주가 선택한다. 제2, 제3의 대주주가 감사인을 선임할 때 제1 대주주의 뜻을 거스르기 어렵고, 위원 중에서 한 표에 불과한 채권금융기관이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새로운 개선안이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발상이다.

우리나라에서 공인회계사가 자본시장의 꽃일 수 없는 이유는 감사인 선정권을 거머쥔 경영자의 압력에 저항할 수 있는 감사인의 힘이 너무 약한 데 있다는 문제의 핵심을 봐야 한다. 우선 감사의 질을 높여야 한다. 감사의 질은 감사인의 독립성과 전문성에 달려 있다.

감사인의 독립성이 확보되려면 감사 계약 과정의 경쟁이 완화돼야 한다. 또 감사인은 감사를 받는 회사 경영자가 아니라 정확하고 철저한 감사를 원하는 채권자, 금융기관, 소액투자자, 사회단체 및 회계전문가들이 가져야 한다.

감사 계약 과정의 경쟁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감사시장을 상장기업 감사와 비상장기업 감사로 2원화해 운영해야 한다. 상장기업과 비상장기업의 사회적 비중과 의사결정 방식이 전혀 다른데도 동일한 제도를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기업특성별로 차별화된 감사인 선정방법이 도입돼야 한다. 아울러 미국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감사기간과 부족한 공인회계사를 늘려야 한다.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는 당장 불합리한 회계제도의 전면적 개혁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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