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상상의 세계' 과학소설 같은 미래의 모습

  • 입력 2000년 9월 15일 18시 53분


다른 사람의 정신세계를 헤집어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한 일이 또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프리먼 다이슨의 세계라면 더 무엇을 말하랴? 인문학자의 붓과 예술가의 눈을 가진,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 중의 한 사람인 다이슨이 그려낸 과학소설과 같은 인류의 미래가 너무 짧아 아쉬운 책, ‘상상의 세계’에 들어 있다.

H G 웰즈의 ‘타임머신’이 출간된 지 꼭 100년이 되던 해인 1995년 예루살렘의 히브루 대학에서 했던 그의 강연 내용을 엮은 책이다. 책을 읽노라면 그의 이름(Freeman)마냥 그는 학문적인 깊이와 폭, 그리고 상상력 모두에서 참으로 ‘자유로운 사람(free man)’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공분야인 입자물리학은 물론 생물학을 비롯한 다른 자연과학 분야들과 인문사회과학 여러 분야를 두루 섭렵한 석학 중의 석학이다.

다이슨의 과학세계에는 나폴레옹과 톨스토이가 과학자로 등장한다. 다이슨에 따르면, 거대한 기계장치들을 중앙집권적으로 관리하는 나폴레옹과 비록 맥킨토시 컴퓨터를 가졌을망정 창조적 자유를 만끽하는 톨스토이가 함께 이끌어온 것이 20세기의 과학이었다. 하지만 21세기 과학의 열역학은 점점 더 톨스토이의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움직여갈 것이라고 그는 예언한다.

다이슨은 또 쿤의 명저 ‘과학 혁명의 구조’ 덕택에 많은 이들이 ‘개념에 의한 혁명’의 중요성은 인식하나 사실 그보다 더 빈번하게 일어났던 ‘도구에 의한 혁명’의 영향을 깨닫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컴퓨터공학과 유전자과학, 그리고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신경과학 모두 도구에 의한 혁명이다. 그만큼 과학은 보편성을 바탕으로 한 학문이다.

‘상상의 세계’가 인류의 미래를 그린 책이라 해서 다이슨을 미래학자라 부르는 것은 삼갔으면 좋겠다. 미래학이란 결코 홀로 설 수 있는 학문이 아니다. 어느 한 분야를 깊이 알지도 못하며 남들이 한 얘기들을 이것저것 긁어모아 미래를 점치는 것은 학문이 될 수 없다. 오늘날 우리 주변의 많은 미래학자들은 그저 ‘유식한 점쟁이’에 지나지 않는다. 다이슨의 미래는 과거와 현재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20세기 초반 생물학이 JBS 홀데인을 가지고 있었듯이 21세기 첫머리의 물리학에는 아직도 다이슨이 서 있다. 그가 그리는 미래는 의외로 밝다. 하지만 나는 요즈음 다이슨 자신의 미래를 염려하는 목소리를 듣는다. 한국학술협의회가 다이슨을 우리 곁에 모시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더 늦기 전에 빨리 성사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상상의 세계' / 프리먼 다이슨 지음/ 사이언스북스▼

최재천(서울대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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