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득헌의 스포츠세상]빠를수록 좋은 '떡잎찾기'

  • 입력 2000년 8월 28일 18시 47분


“지금부터 시작해도 될까.”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TV 연속극 허준을 시청하면서 한의학을 공부하고 싶다거나, 도자기 마을에 가보고 도예를 배우고 싶다거나, 인도 철학자의 책을 보면서 수행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것 등이다. 그렇지만 ‘과연 어느 수준까지…’에 이르면 이내 허튼 궁리로 돌리게 된다.

월초에도 ‘시작의 문제’와 마주했다.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수채화로 대상을 받은 화가 정용근씨(48) 때문이다. 그는 마흔이 넘어 미국 신학대학에서 기독미술을 공부했지만 젊어서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인문계 고교를 나와 직장에 다니다 서른이 다 돼 붓을 잡았다고 한다. 그런 생각이 들 만하지 않은가.

화가의 대상 수상은 사실 타고난 재능에다 끊임없는 소망과 정진의 소산이다. 그런데도 그의 성공이 크게 보도됐을 만큼 예외적으로 보인 것은 역시 ‘시작의 나이’ 때문일 것이다. 어떤 분야이건 재능, 욕망, 노력이 있다 해도 시작의 시기를 놓치면 대성하기가 쉽지 않은 게 보통이다. 스포츠도 그런 분야의 하나이다.

국내에 아이스하키 어린이팀이 첫 선을 뵐 때이니 10여년 전 얘기이다. 어린이 훈련을 보게 됐던 나는 당시로는 놀라운 말을 들었다. 캐나다 지도자는 6세가 넘은 어린이들을 보더니 “너무 늦었다. 2, 3세에는 시작해야 아이스하키의 진수에 근접할 수 있을 텐데”라고 지적했다.

조기교육의 효용성에 대해서는 분야별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운동선수는 체력이 전성기의 바탕이 되는 만큼 늦게 시작해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 물론 개인의 소질과 욕망이 전제되는 일이지만 스포츠 스타는 대부분 일찍부터 운동을 시작해 잠재능력을 개발했다 할 수 있다. 골프천재 타이거 우즈, 빙판의 제왕 웨인 그레츠키, 우리의 축구 스타 차범근도 다 그랬다.

그런 점에서 얼마 전 경남 남해에서 열린 초등학교 축구대회는 평가받을 만하다. 스포츠 조기교육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렸고 재능과 욕망이 있는 어린이들에게는 꿈과 기회의 마당이 됐기 때문이다. 남녀 169개 팀 4000여명의 어린 선수가 한자리에 모인 일은 일찍이 없었다. 출전 팀 모두 6, 7번의 경기에다 그룹별 우승자는 가리되 전체 우승팀을 가리지 않는 운영방식도 종래와 달랐다.

어려서부터 운동과 접한다 해도 모두 국가대표나 스타로 성장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일찍 시작한 선수는 대성의 한 요소인 창조적 몸놀림을 일궈낼 수 있으며 근본적으로 운동에 대한 적성 여부를 명확히 감지하게 된다.

재능의 발굴과 개발은 이른 게 좋다고 여긴다.

<논설위원·체육학박사>dh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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