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재락/'놀부 심보' 울산 남구청

  • 입력 2000년 8월 8일 18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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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꽁초 불법투기 사례 600여건을 비디오로 촬영해 신고한 김모씨(28·경남 사천시)에 대한 포상금 지급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미루고 있는 울산 남구청(본보 4일자 A23면 보도)의 태도는 이해하기 힘들다.

남구청의 조례에 따라 김씨는 건당 3만∼5만원씩, 지금까지 남구청이 불법투기를 확인한 총 236건에 대해 최소한 708만원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남구청은 포상금 지급 대신 최근 환경부에 △올해 포상금 예산 가운데 남은 440만원만 김씨에게 지급해도 되는지 △1인당 신고 건수를 제한하는 조례를 제정하는 것이 위법인지 등을 질의했다.

그러면서 남구청은 김씨가 신고한 담배꽁초를 버린 사람들에게는 ‘가차없이’ 건당 5만원씩 모두 118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이 과태료로 포상금을 지급하더라도 472만원이 남는다.

일부 시민들 사이에 “잠복근무까지 해가며 담배꽁초 버리기를 기다리다 비디오로 촬영한 김씨의 태도도 순수하지 못하다”는 소리가 없는 건 아니다. 남구청도 이런 시민들의 지적을 앞세워 포상금 지급을 미루고 있다.

그러나 김씨의 신고사실이 언론에 공개된 이후 울산시내 도로변에서 쓰레기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게 시 관계자들의 얘기다. 질서와 준법정신의 정착은 시민들의 신고정신을 바탕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포상금제 시행을 앞두고 지난해말 열린 공청회에서 김씨와 같은 ‘직업적 신고꾼’의 등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버리는 사람이 없으면 신고자도 없어진다”는 평범한 진리에 따라 결국 이 같은 조례가 만들어졌다.

미국 뉴욕주는 쓰레기 불법투기 과태료의 50%를 신고자에게 지급하도록 법으로 정하고 이를 곧이곧대로 집행하고 있다. 남구청이 김씨에게 조례에 없는 격려금을 줄 수는 없을지라도 조례를 스스로 사문화해서는 안될 것이다. 신뢰의 붕괴는 이런 데서부터 시작된다.

<정재락기자>jr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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