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명건/前의원도 소환 못한 검찰

  • 입력 2000년 8월 3일 18시 57분


검찰이 정치인 비리를 수사하면서 또 정치권의 눈치를 보고 있다.

김범명(金範明)자민련 전의원이 세금감면 청탁의 대가로 의류업체로부터 거액을 받은 혐의를 수사하고 있는 검찰의 모습이 그렇다.

서울지검이 김전의원의 혐의를 확인한 것은 지난달 중순. 김전의원은 두 차례에 걸친 검찰의 소환에 불응하고 잠적했다.

검찰은 김전의원이 계속 나오지 않자 ‘강제소환하겠다’며 엄포를 놓았지만 곧 ‘더 기다리겠다’고 말을 바꾸었다. 3일에도 검찰은 “다음주 초까지 기다리려 했으나 더 늦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검찰의 이같은 입장 선회의 배경에 정치권의 ‘작용’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동안 검찰에는 김전의원에 대한 선처를 부탁하는 정치권의 전화가 여러 번 걸려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초 검찰 내부에선 전직 국세청장과 현직 은행장 등도 함께 연루된 이번의 거액 수뢰 사건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자평이 있었다.

그러나 제대로 진행되던 수사가 정치인이라는 장벽에 걸리면서 ‘게걸음’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지난주까지도 “관련자 진술뿐만 아니라 계좌 추적도 모두 끝나 사람을 불러오는 것이 수사의 마지막”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김전의원은 잠적했고 현재 검찰은 그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 상태다.

‘체포영장 청구’방침을 거듭 천명했던 검찰이 태도를 바꾸면서 내세우는 논리는 “낙선 의원이라고 함부로 수사한다는 비난이 일지 않도록 하고 모양새를 갖추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정치 검찰’임을 자인하는 것으로 국민에게 비쳐지지는 않을까. 범법 혐의를 밝혀 내고도 상대가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무작정 자진 출두하기를 기다리는 검찰의 자세는 평상시 ‘보통 피의자’들을 대하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이명건기자>gun43@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