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이런일이…]기업채무동결 8·3조치 ‘모럴해저드 원조’

  • 입력 2000년 8월 2일 18시 28분


28년 전 오늘. 1972년 8월3일의 일이었다. 박정희 전대통령이 긴급 담화문을 발표했다. “나는 오늘 국민경제의 안정과 투자의 촉진을 위한 일련의 종합 경제시책을 제시하고 기업인들의 새로운 분발과 국민 여러분의 협조를 촉구합니다.”

엄숙한 목소리였다. 모든 국민은 긴장했다. 이어 폭탄선언이 나왔다. 핵심은 채무를 동결한다는 것. 채권자의 돈 받을 권한을 일정기간 박탈해 버렸다.

빚에 허덕이는 기업들에 숨통을 틔워주자는 취지였다. 70년대 초부터 세계경기 불황에 따른 수출부진과 기업도산 위기에 처해 있던 한국경제 회생을 위해 박 정권이 내던진 승부수였다.

이 정책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상당수의 학자들은 당시의 조치로 기업이 살아나 경제위기를 극복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 조치는 채권자(국민)의 재산을빼앗아 기업들에게 나눠줬다는 점에서 ‘폭력적 관치 경제’의 전형이었다는 것. 또 빚을 많이 얻고, 방만하게 경영한 기업일수록 많은 이득을 봤다는 점에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의 원조라고 부를 수 있다. 무조건 빚부터 얻고 보자는 기업들의 방만한 경영은 이 때부터 싹이 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8·3조치의 주역은 당시 경제정책에 관한 실권을 행사하던 김정렴 대통령비서실장이었다. 최초 아이디어는 전경련 김용완 회장에게서 나왔다. 실무 기안작업을 맡은 이는 김용환 청와대 외자담당비서관. 이헌재 현 재정경제부장관도 재무부 금융정책과장으로 참여했다.

정부가 만든 경제백서에는8·3조치에 대해 “고금리 등 우리나라 산업의 구조적인 애로요인을 근원적으로 해결함으로써 70년대의 지속적 성장기반을 확고하게 했다”고 기록돼 있다. 그러나 강철규 서울시립대 교수는 “8·3조치는 한국경제에 관치주의와 모럴 해저드라는 부정적인 유산을 남겨놓았다”며 “다시는 반복하지 말아야 할 정책”이라고 밝힌다.

기업들의 결합재무제표가 최근 발표됐다. 대부분 빚투성이다. 28년 전 8·3조치의 유산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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