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속으로]권성우/이인성 산문집 '식물성의 저항'

  • 입력 2000년 6월 30일 20시 48분


일찍이 동구의 어느 비평가는 에세이를 ‘인간 영혼의 가장 은밀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마음 상태와 동경을 표현하려는 욕구’라고 갈파하면서 에세이문학의 독특한 매력을 표현한 바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에세이의 매력은 그 어떤 글쓰기 양식보다도 글쓰는 주체의 사유와 마음의 무늬가 투명하게 드러난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니, 엄격한 자기통제와 문학적 수련이 담보되지 않았을 경우, 에세이는 어느 순간 지리멸렬한 자기 드러냄으로 전락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치열한 성찰과 자연 및 타인과의 진지한 대화로 이루어진 탁월한 에세이는 그 자체로 매혹적인 문학적 경지라고 할 수 있을 터이다.

이인성 산문집 ‘식물성의 저항’(열림원)을 읽으면서, 나는 오랜만에 탁월한 에세이를 읽는 즐거움을 느꼈다.

내 생각에 이인성은 김화영, 복거일, 황지우, 이성복, 고종석 등과 더불어 유려하면서도 사유의 깊이가 드러나는 에세이의 진수를 보여주는 문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식물성의 저항’에는 그의 소설과는 또 다른 이인성의 면모와 사유의 흔적, 문학적 견해, 대중문화에 대한 생각 등이 흥미롭게 표출되어 있다.

모두 3부로 이루어진 이 산문집에서, 3부는 김현, 이청준, 황지우 등 이인성이 각별하게 애정을 지니고 존중했던 문인과의 만남을 기록한 글이다. 이 문학적 에세이들을 통해, 나는 이인성이 자신과의 문학적 인간적 교류를 맺은 문인들과 얼마나 성실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가 하는 점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그 대화는 타자의 내면과 사유의 깊은 곳까지 추를 드리우는 지극히 섬세한 경지이다.

특히 임종을 앞둔 김현 선생을 관찰한 ‘죽음 앞에서 낙타 다리 씹기-김현 선생의 마지막 병상’은 한 사람과 한 사람의 만남이 얼마나 도저한 상호 이해에 도달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을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는 에세이라고 하겠다.

또한 이인성은 이 영화의 시대에 자신이 소설을 쓴다는 것에 대한 남다른 자의식을 지니고 있는 소설가이기도 하다. 그의 이러한 문학적 자의식은 1부의 ‘소설이냐 자살이냐’와 2부의 ‘언어의, 언어에 의한, 언어를 위한-21세기 문학 또는 식물성의 저항’ 같은 문학적 에세이에서 정교하게 드러나 있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문학만의, 혹은 소설만의 고유한 특성과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 다양한 대중문화에 포위된 문학의 생존방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문학적 입장은, 앞으로 전개될 문학의 운명에 대한 유력한 방책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되새겨 볼만한 가치가 있다.

다만, 소설이 이야기의 차원으로 축소되는 것에 대해서 강렬한 저항의식을 지닌 그가, 지극히 단순한 이야기의 극대화라고 할 수 있는 게임방식의 소설인 ‘게임 오버-수로 바이러스’를 높이 평가하고 있는 점은 자기 모순이 아닐까?

지금까지 내가 둘러본 그 어떤 문인의 것보다도 공들인 홈페이지(www.leeinseong.pe.kr)를 지닌 그가 “그러므로 이제, 나는 권한다. ‘네티즌’들은 인터넷에서 구한 정보를 품고 가상 세계의 문을 열고 나가, 그것이 현실과 어떻게 부딪치는지를 몸으로 활짝 겪으라고. 또 인터넷에서 접속한 누군가가 있다면 얼굴을 맞대고 만나라고. 가능하면 상대의 손을 잡고, 모니터에 친 인터넷 언어와는 어떻게 다른 말을 하는지, 그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직접 듣고 보라고. 그리고 관계의 눈으로 ‘나’를 곱씹으며 다시 인터넷 앞에 앉으라고.

그리하여 자기가 인터넷의 일부로 편입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이 자기의 일부가 되도록 만들어가라고”(‘문화의 시대’를 위한 두 반성) 얘기하는 것은 의미심장한 대목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식물성의 저항’ 이후 최근에 씌어진 이인성의 에세이를 직접 만나고자 하는 이들은 인터넷으로 들어가 그의 홈페이지를 찾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권성우(문학평론가·동덕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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