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석유시장 질서 잡을 때

  • 입력 2000년 6월 29일 19시 27분


국내 석유제품 업체들의 비정상적인 영업행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부지역에서 생산업체들과 관련 있는 조직이 시장장악을 위해 담합으로 완제품 수입업체의 진출을 봉쇄한 것은 명백한 실정법 위반으로 처벌받아 마땅하다. 물론 그 같은 행위를 감독하지 못했거나 조장한 재벌그룹 계열의 정유사들도 비난을 면키는 어렵다.

특히 시장질서를 파괴하는 국내 정유사들의 덤핑행위는 누구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낮아진 가격이 소비자인 국민에게 혜택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중간 유통업자들의 배만 부르게 하고 탈세의 도구로 이용된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완제품 수입업체들이 국산품 가격에 연동해 미미한 차이의 저가정책을 유지하는 것도 소비자들을 현혹하고 생산업체들을 자극해 시장교란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당당해 보이지는 않는다.

이 같은 유류제품 시장의 혼란은 기본적으로 공급자 위주로 가격이 책정되는 시스템의 잘못에 기인한 것으로 그 책임의 일말은 정부 당국에도 있다. 세계 선진국들이 내수시장에 현물거래 개념을 도입하는 것도 바로 소비자중심의 가격체계를 갖추자는 데서 시작됐다는 점을 당국은 참고할 필요가 있다.

시장구조가 낙후하게 된 또 다른 원인은 공정경쟁의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해에 따라 담합과 과당경쟁 사이를 수시로 넘나드는 정유 4사들은 심지어 주유소가 거래사를 바꾸려 하면 일제히 공급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공급자 위주의 시장을 지키고 있다. 건전한 경쟁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97년부터 실시된 가격자율화는 그야말로 업자들의 배만 부르게 하는 허울좋은 제도에 그칠 것이다.

수입품 취급사에 대한 국내 업체들의 담합 대응도 사실은 외국메이저의 국내 상륙을 막기 위한 과민반응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정유 4사가 외국업체의 시장진입을 막고 싶다면 편법보다는 내부적으로 경쟁력을 키워 당당하게 대응할 채비를 갖추는 모습을 통해 국민의 사랑을 받도록 하는 것이 옳다.

다른 업종에 비해 설비투자 규모가 커 부채비율이 높고 상대적으로 이익구조가 열악하다는 업계의 고충은 이해가 간다. 또 가격체계와 유통과정이 복잡해 정유사가 시장 전체를 관리하기 쉽지 않다는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유류제품은 국민 거의 대부분이 소비자라는 점, 그리고 산업체 원가에 미치는 비중이 크다는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이번에 본보가 특종보도한 석유시장 분석기사를 통해 드러난 문제에 대해 정부는 제도개선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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