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문화재 숨통죄는 ‘법대로’ 건축…윤보선家 보존논란

  • 입력 2000년 6월 19일 19시 12분


서울 종로구 안국동 윤보선(尹潽善)전 대통령의 사저(私邸) 보존 여부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윤보선가(家)는 99칸짜리 전통 양반 가옥의 면면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건축물. 조선 철종의 부마인 박영효(朴泳孝)대감과 윤 전대통령이 터를 다진 뒤 해방 후 한국민주당의 산실이자 한국 야당의 무대였던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곳이다. 78년 8월 서울시 민속자료 27호로 지정된 지방문화재. 대지 1411평, 건평 250평으로 지금까지 안채 사랑채와 부속건물들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 집의 담 바로 옆에 4층 규모의 상가건물이 4월부터 건축 공사에 들어가자 문화재 훼손을 우려한 시민단체와 윤 전대통령의 장남인 상구(相求)씨 등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도시연대와 문화개혁시민연대 등 6개 시민단체는 19일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행정자치부 문화재청 서울시 종로구청에 ‘윤보선가 보존을 위한 시민청원’을 냈다. 문화개혁시민연대 강찬석(姜瓚錫)문화유산보존위원장은 “문화재보호법 등에는 문화재 보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행위를 할 때 행정당국의 허가를 받도록 돼 있는데도 건축허가를 내주는 과정에서 그런 사전 절차가 없었다”고 행정당국의 안이한 태도를 지적했다.

특히 지난해 4월 ‘행정처리기간 단축’이라는 명목아래 건축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문화재보호구역 경계로부터 100m 이내 건축물의 건축허가 사전승인제가 폐지된 것이 문화재 환경 훼손의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강위원장은 주장했다.

서울시와 종로구청은 이에 대해 “현행법상 적법한 테두리 내에서 건축허가를 내준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특히 지정문화재에 직접 손을 댈 경우에는 규제가 까다롭지만 지난해 건축법 시행령 개정으로 인해 주변 경관에 대한 행정당국의 건축허가 규제 권한은 없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종로구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5월 원남동 문화재보호구역 주변에 대한 건축허가도 서울시의 회신에 따라 승인한 전례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5대째 지켜 내려온 한국전통가옥의 환경은 서울시 문화재라는 이유로 많은 건축제한을 받고 있으나, 문화재주변에 대한 보존대책을 세우지 않은 채 인접 지역의 건축허가만 내주는 것은 역차별이 아니냐”고 반발했다. 강위원장은 “조선시대 양반촌인 북촌(北村)마을의 상징적 건축물인 윤보선가 경관보존은 문화재 환경보호의 시금석”이라며 “앞으로 불합리한 건축관련 규정을 개정하기 위한 입법청원 활동도 본격화하겠다”고 말했다.

<정연욱기자>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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