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존/키핑 더 페이스]종교와 사랑, 섹스에 대한 유쾌한 농담

  • 입력 2000년 6월 12일 11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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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핑 더 페이스'., 곧 '믿음 지키기'쯤으로 번역되는 이 영화는 각각 가톨릭 신부와 유태교 랍비로 뉴욕에서 성장한 두 죽마고우의 우정과 사랑의 얘기를 그린 영화다.

이 정도의 얘기라면 끝없이 벌어지는 종교논쟁을 이 영화의 중심 화두쯤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신부와 랍비가 어릴 적 또 한명의 단짝이었던 여자 친구와 각각 사랑에 빠지면서 영화는 갑자기 삼각관계 러브 로맨스로 바뀐다. 잘 나가다가 왠 삼천포냐고? 천만에.

이 영화는 처음부터 자신의 갈 길을 로맨틱 코미디로 정해 놓고 있다. 단지 사제와 목회자를 중심인물로 내세웠을 뿐이다. 그러니 자꾸 종교얘기를 들먹이며 이 영화를 길 잃은 양으로 취급하지 마시라(salon. com의 앤드류 오히어 평론, Film2.0 번역기사 참조). 영화는 때로 쉽게 쉽게 즐길 만한 것이어야 한다.

브라이언(에드워드 노튼)과 제이크(벤 스틸러)는 맨하탄에서 함께 자란 친구. 둘 다 중산층 출신이다. 브라이언은 가톨릭 신부가 됐고 제이크는 유태교 랍비가 됐다. 지구촌 어디선가는 전쟁까지 치를 만큼 극심한 차이를 보이는 두 종교의 대표급 선수가 됐지만 두 사람의 우정은 별로 흔들림이 없다.

오히려 둘은 힘을 합 쳐 노인 사교클럽을 운영할 계획까지 세운다. 두 사람 모두 엄격한 규율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롭고 진보적인 설법으로 신도들에게도 큰 인기를 차지하고 있다. 모범적인 종교화합. 성직자로서 두 사람의 인생은 탄탄대로다.

이 둘의 우정을 갈라 놓는 것은 성모 마리아나 율법의 영웅들이 아니다. 이 둘을 서로 시기하고 미워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여자 문제'에서 시작된다. 뉴욕에서 함께 자랐지만 8학년때 샌프랜시스코로 이사를 떠나 버린 어릴 적 친구 애나(제나 앨프먼)가 정말로 멋지고 늘씬한 커리어 우먼이 되서 이들 앞에 나타난 것이다.

애나가 선택한 남자는 랍비인 제이크. 그러나 문제는 브라이언 신부마저 이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성, 애나를 사랑하게 됐다는 것이다. 제이크가 비밀스럽게 애나를 만나온 것(잠자리를 같이해 온 것)을 알게 된 브라이언은 질투와 분노로 치를 떤다. 제이크는 제이크대로 이교도와의 결혼을 금하는 유태교 율법때문에 애나의 사랑을 떳떳이 받아들이지 못한다. 애나는 그런 제이크의 모습에 절망한다. 이제 셋의 우정은 한마디로 '쫑'이 난 셈이다.

종교와 사랑, 우정 그리고 섹스. 어찌 보면 어깨에 잔뜩 힘을 준 채 끌고 갈 수 있는 주제들이지만 영화는 시종일관 가볍고 경쾌한 발걸음을 취한다. 이들 문제의 해법이란 게 결코 복잡하게 찾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믿음'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종교든 사랑이든 또는 우정이든 섹스의 문제든 결국 모든 건 '믿음'에서 비롯된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절대자의 존재가 꼭 있다는 것, 더 나아가 공동선의 가치가 반드시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이다. '믿음'이 있으면 아무리 힘들고 불쾌한 일이 생기더라도 우정과 사랑은 결코 갈라서지 않는다. 단지 그 '믿음 지키기'가 때로는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는 데 있으며 사람들로 하여금 우여곡절을 거쳐 그 믿음을 지키게 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종교계의 오랜 고민과 해묵은 논쟁을 이렇게 가볍게 또 일거에 정리해 내면서 감독 에드워드 노튼과 시나리오 작가 스튜어트 블룸버그는 30대 젊은이들이라면 지니고 있을 법한 7, 80년대의 문화 아이콘들을 톡톡튀는 유머를 곁들여 열거한다.

애나에 대한 추억속에는 팝가수 리프 가렛이나 테이텀 오닐이 자리하며 끊임없이 재잘대는 두 사람의 익살과 유머는 우디 앨런에서 배워 온 듯이 보인다. 남자 둘과 여자 하나라는, 영화의 가장 섹시한 소재인 미혼 청춘남녀의 삼각관계 로맨스는 프랑수와 트뤼포의 <줄 앤 짐>을 연상시킨다.

간간이 폭소를 터뜨리게 하는 것도 이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더하게 한다. 인간의 일곱가지 대죄를 가르치는 대신 영화 <세븐>을 권유하는 신부 브라이언이나 설교문을 "www.구세주.com"에서 베낀다고 능청을 떠는 랍비 선생 제이크의 모습은 현대 젊은이들의 발랄한 모습 그대로를 닮아 있다.

젊은이들의 좌충우돌 사랑담은 젊다는 것 하나 때문에, 이들이 종종 사회가 원하는 규율을 깨뜨린다 해도 너그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신부가 여자에게 욕정을 느끼든 랍비가 '감춰둔' 사랑을 한들, 그게 뭐 그리 대수겠는가. 하나님의 가르침은 본래 그렇게 엄격하지 않았다. 아니, 않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벤 스틸러의 코믹 연기는 두말할 나위 없이 일품이다. 감독과 주연을 겸한 에드워드 노튼은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로 순박하고 사랑스런 연기를 펼쳤다.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답게 영화 곳곳에 매력적인 뉴욕 풍광을 숨겨 놓았다. 마천루의 위엄, 허드슨강, 맨하탄 북부의 클로이스터스 성당 등 등. 잘 들여다 보면 뉴욕 관광 가이드 영화도 된다. 그것만으로도 볼거리는 충분하다.

[오동진(ohdjin@film2.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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