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주목되는 남북회담 '의제'

  • 입력 2000년 5월 18일 19시 29분


남북한 양측이 어제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절차에 합의함으로써 역사적인 회담의 기본 틀이 마련됐다. 남북한 대표가 준비접촉을 한지 26일만에 타결한 이 실무절차 합의서는 한반도 냉전구조해체와 민족문제해결을 위해 내디딘 의미있는 발걸음이다.

이번 합의서에서 주목되는 점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 사이에 역사적인 상봉과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된다”고 양측 정상의 이름을 명기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상봉’과 ‘회담’의 주체가 틀릴 수 있다는 그동안의 우리측 우려 대신 남북한 정상회담이 명실공히 이뤄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회담의 핵심이 될 의제에 있어서는 김대통령이 베를린 선언에서 밝힌 한반도의 평화, 경제협력, 이산가족 상봉, 남북상설협의기구 설치 등 4개항이 구체적으로 명기되지 않았다. “역사적인 7·4 남북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조국통일 3대원칙을 재확인…”하는 식으로만 포괄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사실 의제문제는 그동안 남북 양측 사이에 뜨거운 감자였다. 우리는 의제를 구체적으로 밝히자는 것이었고 북한측은 이처럼 7·4공동성명 내용을 넣으면서 포괄적인 표현을 하자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본란이 이미 주장했듯이 북한측이 주장하는 7·4공동성명의 3대원칙인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에는 주한미군철수 문제를 비롯해 우리가 수용할 수 없는 내용들이 함축되어 있다.

양측 정상이 마주앉을 때 이 부분에 대해 어떤 의견이 오갈지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우리의 기본 정책과 원칙이 흔들리거나 북한측에 트집을 잡히는 일은 없도록 철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취재기자 수를 우리가 주장한 80명선에서 50명선으로 줄인 것도 역사적인 정상회담이라는 측면에서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러나 북한측이 정상회담의 실황중계가 가능하도록 최우선적으로 조치를 취해주겠다고 한 것은 크게 고무적인 일이다. 지금까지 평양에서 이뤄진 남북한 접촉의 경우 실황중계는 한 번도 없었다.

이번 정상회담이 큰 결실을 맺기 바라는 마음은 간절하나 그같은 기대가 바로 충족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반세기 넘게 응고된 남북한 관계가 하루아침에 풀릴 수는 없다. 따라서 지금으로서는 정상회담이 열린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역사적 의미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기왕에 회담이 열린다면 외양적인 행사보다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데 주력해야 마땅하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제의한 4개항의 의제에 대한 남북한 양측의 협의가 앞으로도 계속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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