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성경륭/권력나눠야 지방발전 길트여

  • 입력 2000년 5월 17일 19시 34분


건설교통부는 최근 김대중대통령에게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기 위해 공공기관의 수도권 입지를 억제하고 기업 및 대학의 지방이전을 촉진할 것이라는 요지의 보고를 하였다. 이에 대해 김대통령은 "장관의 진퇴를 걸고 획기적 조치를 취하라. 대통령의 의지를 실어준다"면서 강도 높은 요구와 함께 강력한 지원의사를 표시했다.

김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98년 4월 건교부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부터 획기적인 수도권 정책을 강구하라고 지시를 내리는 등 초지일관 이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금년 2월초에는 청와대 안에 '지역균형발전기획단'까지 설립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김대통령의 이러한 관심과 의지에도 불구하고 건교부의 보고 내용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수도권 집중을 억제하기 위해 제시한 방안들이 고작 수도권 내 공공기관의 신 증축 금지, 공공기관의 수도권 내 민간 건물 임차 금지, 몇몇 보건기관의 지방이전 등과 같은 지엽말단적 처방에 불과했다. 이미 수도권에 터를 잡은 정부기관과 공공기관에 대해서는 기득권을 인정하겠다는 매우 안이한 태도가 고스란히 깔려 있다.

실효성 있는 수도권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전체 국토면적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46%의 인구, 55%의 제조업체, 82%의 정부 및 공공기관, 95%의 대기업 본사가 밀집하게 된 구조적 원인에 대해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이에 기초해 정부기관부터 지방이전의 모범을 보이는 근본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머리는 깎지 않고 남의 머리만 깎으려는 허무맹랑한 정책을 남발해 결국 비웃음을 사게 된다.

수도권으로 사람 돈 일자리 등이 몰려들게 된 것은 기본적으로 권력의 과도한 중앙집중에서부터 비롯됐다. 주지하듯 조선조이래 지금까지 중앙정부는 모든 권력을 독점한 고도의 중앙집권체제를 발전시켰다.

이런 구조 속에서 출세하고 이권을 확보하기 위해 중앙정부가 위치한 서울과 수도권으로 사람과 기업이 몰려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수도권 집중의 이면에 권력 집중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정부가 해야 할 핵심적 과제는 다음의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정책기능과 집행기능을 구분하여 중앙정부는 전자에 중점을 두고, 후자의 기능은 지방자치단체에 이양하는 분권화 조치를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 경찰, 교육, 중소기업육성 등 여러 분야의 특별지방행정기관을 점차 지방으로 이관해야 한다.

둘째, 공공기관의 신 증축 억제 차원을 넘어 수도권에 포진한 600여개 정부기관 및 공공기관부터 지방으로 재배치하는 강도 높은 분산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토관리 정책을 총괄하는 건교부부터 지방으로 이전하는 살신성인의 모범을 보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타 부처와 공공기관, 그리고 민간에 대해 강력한 요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수도권 정책의 핵심은 중앙과 수도권에 집중된 권력과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대거 분산시키는 데 있다. 집권국가와 집중사회를 '분권국가 분산사회'로 바꾸는 국가개혁 차원에서 수도권 정책에 임해야 한다.

이러한 개혁은 권력과 자원이 하나의 중심으로 집중되던 산업사회에서는 불가능했지만 '시간과 공간의 압축'을 가져오는 세계화 정보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기술적으로 가능하고 또 정치적 경제적으로 꼭 필요하다.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4대 강국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어느 곳도 전략적 중요성을 갖지 않은 곳이 없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수도권만 경쟁력을 가지면 된다는 식의 좁은 생각으로는 수도권 문제를 풀지 못하는 것은 물론 한국의 장래를 개척할 수 있는 새로운 전망도 제시할 수 없다.

성경륭<한림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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