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한국의 난민정책 실태/난민인정 사례 全無

  • 입력 2000년 5월 15일 18시 51분


난민신청을 한 미얀마인 반체제활동가 샤린(가명·29)에 대한 법무부의 보호조치 해제를 계기로 당국의 난민문제 처리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법무부는 10일 불법체류자로 분류돼 강제퇴거명령을 받은 샤린의 이의신청을 받아들여 그에 대한 보호조치를 해제했다. 샤린에 대한 보호조치 해제는 그의 난민신청을 정식으로 접수하고 심사절차에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무부는 그동안 난민신청자에 대해 난민신청 접수기간(입국 후 60일 이내)이 지났다는 등의 절차적 결함을 이유로 신청 자체를 인정하지 않거나 기각한 경우가 많았다.

이에 따라 샤린은 구금 중이던 외국인보호소에서 풀려나 미얀마 민족민주연맹(NLD·총재 아웅산 수지) 한국지부로 복귀했으며 앞으로 정식 난민심사를 받게 된다. 또 샤린에 대한 법무부의 조치를 계기로 그와 같은 처지에 있는 NLD 한국지부 회원 20여명이 이번주 안으로 집단 난민신청을 낼 것으로 알려졌다.

▼난민 인정 실태▼

우리나라는 92년 12월 난민에 관한 국제조약인 국제난민조약(51년 체결)과 국제난민선택의정서(67년 제정)에 가입함으로써 난민에 관한 국제적 보호의 대열에 동참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난민 인정 실태를 보면 정부가 과연 이 약속을 지킬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한국에 대한 난민신청은 94년 5명이 처음으로 신청서를 낸 이후 지난달 말까지 모두 54명에 이르고 있다. NLD 한국지부 회원 20여명이 이번주 집단 난민신청을 내면 80명 가까이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난민신청이 받아들여진 적은 한번도 없다. 특히 난민조약에 의해 국제 난민문제를 총괄하기 위해 만들어진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이 난민일 가능성이 높다고 인정한 ‘위임난민’(Mandate Refugee)도 4명 있었는데 이들에 대해서도 난민지위를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 관계자는 “대부분의 경우 난민신청자 본인이 난민 인정의 요건인 정치적 박해 사실 등을 제대로 입증하지 못해 기각됐다”고 설명했다.

반면 난민조약에 가입한 대부분의 나라들은 매년 수백명 혹은 수천명씩 난민을 인정하고 있으며 난민 인정에 인색한 일본도 최근 들어 매년 여러 명씩 난민을 받아들이고 있다.

UNHCR에 따르면 98년 전세계적으로 65만1000건의 난민 관련 결정이 있었는데 그중 약 26%에 해당하는 17만1000건이 난민 혹은 그와 비슷한 효력을 갖는 결정을 받았다.

▼난민 정책의 문제점▼

샤린의 변호인인 박찬운(朴燦運)변호사는 “우리나라에 난민을 신청한 사람들 대부분이 출신국가의 정치상황이 불안하고 인권침해가 많은 나라들이어서 난민으로서 보호할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 중 단 한명도 난민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의 난민정책이 얼마나 인색한지를 웅변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인권단체에서는 우리의 경우 난민정책의 출발점부터 문제라고 지적한다. 한 인권단체 관계자는 “법무부가 난민문제를 도맡아 처리함으로써 정부의 외교정책이나 출입국 정책의 관점에서 처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난민문제는 기본적으로 인권문제인 만큼 해당국가의 외교적 또는 정치적 관점이 아니라 신청자가 본국으로 송환됐을 경우 받을 박해의 가능성을 토대로 결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난민문제의 모법(母法)인 출입국관리법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 법은 난민신청은 입국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난민신청 사건의 대부분은 이 60일 제한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난민신청 자체가 거부되거나, 설사 접수가 됐다 하더라도 이 규정 위반을 이유로 난민심사 절차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변 관계자는 “말도 안 통하고 법률지식도 잘 모르는 외국인에게 60일 이내에 신청을 하도록 강요하고 이를 어겼다고 해서 신청을 받아주지 않는 것은 난민조약의 취지를 어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난민문제 담당자들의 비전문성과 UNHCR 등 국제기구와의 협력관계 부재(不在), 난민 조사과정에서의 통역 등 의사소통 문제 등이 지적되고 있다.

<이수형기자> 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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