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강철규/삼성車 매각 활용하기 나름

  • 입력 2000년 4월 26일 18시 57분


말도 많던 삼성차가 세계시장 점유율 9.1%의 프랑스 자동차회사 르노에 매각된다. 매각조건에 대해 헐값에 팔렸다거나 국부 유출이 아닌가 등 의구심을 갖는 견해도 적지 않다. 삼성차에 들어간 투자액이 4조3000억원이었던 점을 상기하면 이번 판매가격 6200억원은 대단히 싼값이라는 점에 이견이 없다.

그러나 그것이라도 받고 판매하지 않았을 경우 회사 자체가 존립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보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얼마를 더 받을 수도 있었는데 이를 싸게 팔았다는 등 논의는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다. 그보다는 르노가 삼성차를 인수한 것이 한국경제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좋다. 닛산을 인수한 르노는 세계 자동차 메이저이다. 이러한 회사와 한국의 삼성차가 합작회사를 설립하게 된 것은 한국 자동차 산업 역사상 획기적인 일이다. 그동안 국내 업체만으로 국내 및 세계시장에 뛰어들었으나 이제부터는 세계 메이저와 합작으로 국내시장은 물론 세계시장에 뛰어들게 되었다는 의미를 가진다.

지난 수년 사이에 세계 메이저 자동차 회사들은 크라이슬러-벤츠, 포드-볼보, 르노-닛산 등과 같이 인수합병이나 제휴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져 이미 6대 메이저로 재편성되고 있다. GM이 세계시장 22.3%, 포드가 15.9%, 도요타 10.9%, 크라이슬러와 다임러벤츠가 7.6%를 차지하는 판도인데 르노가 취약지역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려는 의도가 이번 합병 뒤에 숨어 있다.

세계자동차 산업의 인수 합병과 제휴가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생산과잉과 연구개발비의 증가, 기술의 발달로 최소 경제규모의 증가, 산업의 디지털화로 글로벌 네트워크 등장, 그리고 중국 동남아 동구 등 신흥시장의 출현 등에 기인한다. 이런 치열한 경쟁환경에서 패배해 퇴출되는 것보다 적과 제휴를 해서라도 연구개발(R&D) 비용을 줄이고 세계시장을 분할해 점유율을 높여보려는 데서 나온 것이다.

세계 13대 이후로 밀리는 한국 자동차회사들이 이러한 추세에 어떻게 적응하는가가 과제였는데 르노의 삼성자동차 흡수는 한국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결정하는 하나의 방식을 제공해준 셈이다. 이후 대우가 GM이나 포드 등과 제휴하는 속도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내시장은 물론 중국 등 신흥시장이나 선진국 시장에서 한국자동차 회사들은 6대 메이저와 합작으로, 혹은 현대와 같이 독자적으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형국으로 변화할 것이 예상된다.

르노와 삼성의 합작이 가져올 경제적 이익은 우선 소비자가 선택할 상품의 다양성 증가와 치열한 경쟁으로 가격 인하와 품질 향상 및 애프터 서비스 향상 등이다.

생산자에게는 르노의 축적된 기술을 도입할 경우 디자인과 생산기술 발전이 가능하고 신 제품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 비용의 절감을 가져올 것이다. 특히 우리 자동차산업의 취약점인 독자 엔진개발 기술의 발전에 기대를 걸어볼 수 있다. 르노와 삼성의 마케팅망을 활용할 경우 선진국과 중국 진출 등 세계시장으로 확대해 대규모의 경제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마땅한 산업부문이 없어 고심하는 부산지역 경제에도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이 확실하다. 자동차 자체의 신규 고용이 바로 증가할 것이고 부품산업 서비스 산업 등 연관산업의 발전이 예상된다.

문제는 앞으로 과연 르노와 삼성의 합작회사가 경쟁력을 가지고 세계시장으로 뻗어나가 이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인가이다. 그 결과에 따라 삼성 르노 합작의 성공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잘 되면 2005년 생산규모를 40만대로 계획하고 있는데 이것은 공장단위로 겨우 규모의 경제이익을 얻을 수 있는 수준이다. 만약 잘 안돼 20만대나 30만대의 생산으로 멈추게 되면 단순히 르노의 소규모 조립기지로 전락하게 될 수도 있다. 이 경우 규모의 경제이익도 없고 기술발전의 효과도 없어져 합작 의의가 퇴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향후 경영과 경쟁력 향상 노력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 하겠다.

강철규(서울시립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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