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한기흥/한국은 과연 부자나라인가

  • 입력 2000년 4월 19일 19시 14분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의 상반기 합동총회(16,17일)가 끝나자 워싱턴은 18일 모처럼 평상시의 모습을 되찾았다.

IMF 등이 가난한 국가에 차관을 빌려줄 때 지나치게 가혹한 조건을 단다며 총회를 저지하려고 하던 수천명의 시위대는 대부분 워싱턴을 떠났다. 경찰은 회의장인 IMF본부 일대에 내려졌던 교통 및 통행 통제를 풀었고, 시청 소속 공무원들은 며칠간의 격렬한 시위과정에서 발생한 쓰레기 등을 치우느라 분주했다.

17일 임시 휴무했던 연방정부 공무원들도 정상 출근했고 상점들은 다시 문을 열었다. 그리고 워싱턴 시민들의 관심은 온통 지난 주말 사상 최악의 폭락을 했다가 이번 주 들어 이틀째 폭등세를 보인 뉴욕 증시에 모아졌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IMF 등을 상대로 ‘가진 자’와 ‘못가진 자’ 사이의 경제적 정의를 절규했던 시위대의 주장은 나름대로 상당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뉴욕타임스지를 비롯한 미국의 주요 언론은 시위대가 총회를 저지하는데는 실패했지만 빈국에 대한 부채탕감과 IMF 및 세계은행의 개혁이라는 문제에 대한 여론의 관심을 환기하는 데는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사상 처음으로 격렬한 반대 시위 속에 총회를 치러야 했던 IMF 등의 관계자들은 “시위대가 국제금융기구의 역할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다”고 강변했지만 한편으로는 부채탕감 등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이번 회의 기간 내내 한국은 1997년 시작된 금융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대표적 성공사례로 거론됐다. 그러나 IMF의 처방에 따라 경제난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에서 한국이 겪은 고통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었다.

한국이 시위대가 내세웠던 빈국의 범주에 들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가진 자의 범주에 드는 것도 아니다. 세계적 경제정의를 외치는 시위대의 항의를 지켜보며 한국에 대한 IMF의 ‘칭찬’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곤혹스럽기 그지없었다.

한기흥<워싱턴특파원> eligiu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