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태길/倫理교사 전문교육 필요

  • 입력 2000년 3월 27일 20시 12분


김 태 길(철학문화연구소 이사장)

3월 23일자 동아일보에서 “교육학과 출신 윤리교사 임명, 철학과 교수들 ‘질 저하’ 반발”이라는 글을 읽었다. 언뜻 보기에 교육학과 교수들과 철학과 교수들 사이의 밥그릇 싸움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주기도 하나 사실은 젊은 세대 인성교육의 핵심에 관계되는 중대한 문제이므로 나라를 사랑하는 늙은이로서 몇 마디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군사정권 시절에 ‘국민윤리’라는 이름으로 가르치던 것을 이제 정상적인 ‘윤리’교육으로 고쳐서 실시하게 된 것은 우선 반가운 일이다. 다만 교과목의 이름을 바꾸는 것만으로 윤리교육이 정상적 궤도에 오르는 것은 아니며 윤리교육의 성패는 우수한 윤리교사의 확보 여부에 달려있음을 새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현재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실천방안은 자격 있는 윤리교사를 양성하는 데에 매우 부적합하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각 대학에 보낸 공문에 따르면 윤리교육 관련학과로서 교육학과를 명시했으며, 다만 이 학과에 42학점에 달하는 윤리관련 과목을 편성하라고 단서를 붙였다. 이에 대하여 철학과 교수들이 교육부 안은 학문의 전문성과 교육의 경제성 원리에 배치된다고 시정을 요청했다.

이 항의에 대하여 교육부에서는 윤리교육의 해당학과로서 교육학과를 선정한 것은 “복수전공의 개념을 확대한 것이며 철학과에서도 원한다면 교직과정을 설치할 수 있다”고 답변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교육부의 처사는 논리에도 어긋나고 현실에도 맞지 않는다. 논리에 어긋난다 함은 ‘복수전공’의 개념을 그토록 확대 해석할 수 없음을 가리키는 것이요, 현실에 맞지 않는다 함은 윤리학의 강의가 교육부의 생각처럼 그렇게 쉽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복수전공이라 함은 학생측에서 두 가지 이상의 전공과목을 이수할 수 있다는 뜻이며 교수측에서 두 가지 이상의 전공과목을 강의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리고 교육학자도 다소 노력만 하면 윤리학을 가르칠 수 있다는 발상은 윤리학을 상식의 연장선상에 있는 잡학(雜學) 정도로 보는 그릇된 인식에서 유래한다. 윤리학은 본래 인간관계를 다루는 학문이며 현대는 인간관계가 지극히 복잡한 시대이므로 현대의 윤리문제는 매우 깊고 넓은 전문적 탐구를 요구한다.

자격을 믿을 수 있는 윤리교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교육학과 학생들이 같은 학교 철학과에 가서 윤리학 강의를 듣고 철학과 학생들이 교육학과에 가서 교직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그것이 ‘순리(順理)’라는 것이다. 그렇게만 하면 믿을 만한 윤리교사를 다수 배출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최소한 그 정도는 해야 한다는 뜻이다. 윤리교사의 양성은 다른 과목의 교사 양성보다도 한결 더 어렵다는 사실을 교육부에서는 깊이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인문학을 공부한 대학 졸업생들의 취직이 매우 어려운 것이 우리의 현실임을 감안할 때 교육학과와 철학과 교수들이 자기학과의 졸업생을 위한 취직 기회에 신경을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윤리교육 문제는 국가 전체의 장래가 걸린 문제이며 어느 학과 졸업생의 취직이 쉬우냐 어려우냐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이다.

오늘날 우리 한국은 여러 가지 사회 혼란을 겪고 있다. 이 사회 혼란의 원인을 여러 가지로 분석할 수 있겠으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가 그 동안에 젊은 세대의 윤리 교육 내지 가치관 교육을 제대로 실시하지 못했음에 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윤리교사 양성문제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교육부와 교육학과, 그리고 철학과가 모두 대국적 견지에서 대처하기 바란다.

<이인철기자>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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