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두원/무역적자에 관심과 경계를

  • 입력 2000년 2월 28일 19시 51분


경제위기 이후 줄곧 유지되던 무역수지 흑자가 1월 적자로 반전되더니 2월에도 큰 폭의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정부는 이 같은 무역적자를 일시적인 현상이라며 애써 의미를 축소시키는 듯하다. 사실 국제유가의 상승과 반도체 가격의 하락, 그리고 경기침체로 인한 일본 엔화의 약세 등은 어떻게 보면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다.

무역수지가 적자라는 사실 그 자체가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대다수의 개발도상국들이 고도성장의 과정에서 장기간 무역수지적자를 경험하기도 하며 선진국들 역시 경기순환상 일시 무역수지 적자를 겪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경제의 입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무역수지 적자에 대해 특별한 관심과 우려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선 지금의 무역적자가 과연 성장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필요악적인 적자인가를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만약 필요악적인 적자가 아닌 급격한 내수팽창으로 인한 경기과열의 조짐을 반영하는 적자라면 경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현재 경기는 사실 몇몇 우려할 만한 조짐이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선 경기확장이 가계의 소비와 기업의 투자확대 등 민간의 급속한 내수 확대에 힘입은 바 크다. 이는 지난 1∼2년간 민간부문의 저축률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로도 증명되고 있다. 특히 그 동안 안정적이던 물가와 임금이 서서히 오를 기미를 보이고 있는 것도 불안한 징후이다. 이 같은 조짐들로 미루어 볼 때 비록 지금 당장은 경기과열이 아니라고 해도 올 상반기까지는 경기조정에 대한 논의가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다.

무역적자가 염려스러운 또 다른 이유로는 불안한 자본수지의 흑자에 있다. 무역적자에도 불구하고 환율이 여전히 절상압력을 받고 있는 것은 경제위기 이후 완전 개방된 자본시장을 통해 꾸준히 유입된 외환의 영향 때문이다. 과거와는 달리 현재 한국경제에 유입된 외환의 상당 부분은 주식시장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러한 투자자금은 한국의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 언제라도 현금화해 한국을 떠날 수 있는 단기성 자금이다.

더욱이 작년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가시적인 성과를 올리며 진행된 금융개혁이 올해 들어 주춤하는 상태이다. 이로 인해 투신권과 대우사태로 인한 금융부실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의 뇌관처럼 도사리고 있는 실정이다. 만약 이러한 문제점들이 일순간에 부각되어 금융시장에 불안이 다시 찾아온다면 한국의 증권시장에 머물고 있는 외국의 투자자금은 단기간에 빠져나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사태가 발생한다면 최악의 경우 정부가 자랑하는 700억달러 외환보유고도 충분한 방패막이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바로 이 같은 이유들 때문에 다른 국가와는 달리 한국은 아직도 무역수지의 방어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이 같은 위험성을 내포한 무역적자를 치유할 수 있는 처방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우선 환율을 절하해 수출의 가격경쟁력을 회복시키는 외치(外治)가 있을 수 있으며 고금리나 재정긴축으로 내수를 진정시켜 수입을 감소시키는 내치(內治)가 있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물가불안을 일으키고 구조조정을 지연시킬 수 있는 환율처방보다는 금리조정을 통한 내수진정을 선호하나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올해 들어 무역적자와 내수의 과열조짐, 그리고 미완의 금융개혁으로 인한 각종 불안요인들이 산재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총선의 그늘에 가려 이 같은 경제현안들이 제대로 논의되고 있지 못하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총선까지는 기존 경제정책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는 데 급급한 듯하며 야당 역시 각종 내분과 여당에 대한 정치적 공세 외에는 큰 관심이 없는 듯하다.

모든 경제정책이 그렇지만 환율이나 금리와 같은 가격변수를 움직이는 정책들은 이상 징후가 나오기 전에 선제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 성패를 가름하는 기준이 된다. 총선이 다 끝난 후 만시지탄의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지금이라도 경제논의가 활성화돼야 할 것이다.

이두원<연세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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