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아메리칸 뷰티'/증오보다 무서운 무관심

  • 입력 2000년 2월 24일 19시 40분


영화 속에서 ‘당신’을 본다면? 그것도 나이와 주름만 늘어난 채 인생의 실패자로 몸부림치고 있는 자신을 ‘웃으면서’ 발견하게 된다면….

작품상 감독상 남녀주연상 등 3월26일(미국 시간) 발표되는 제72회 아카데미상 8개 부문 후보로 지명된 ‘아메리칸 뷰티(American Beauty)’. 이 작품은 ‘거울아 거울아’라는 주문이 떨어지게 무섭게 뭔가를 보여주는 요술의 거울처럼 관객이 자신의 인생을 오버랩시키게 되는 영화다.

영화는 미국 중산층 가정의 위선과 붕괴를 코믹하면서도, 날카롭게 그리고 있다. 한 침대를 쓰면서도 서로 겉도는 파탄 직전의 부부관계, 기성 세대와 10대의 갈등, 딸의 친구까지 넘보는 중년 남성의 끈적거리는 욕정, 마약과 동성애 등 꽤 무거운 소재들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의 미덕은 웃음과 장미 냄새가 묻어나는 ‘화사한 화면’을 바탕으로 인생의 지저분한 수렁과 거기서 벗어나려는 처절한 몸부림을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다.

40대 광고회사 직원인 레스터(케빈 스페이시 분)의 샤워 장면과 독백은 그의 가정에 닥칠 파란을 예고한다. 그는 물줄기가 뿌려지는 가운데 리드미컬하게 자위를 하면서 “이 순간이 하루 가운데 가장 즐거운 때”라고 내뱉는다. 그런가 하면 그는 또 “아내와 딸은 나를 인생의 패배자로 생각한다. 그들이 옳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아내와 딸도 행복과는 담을 쌓고 있다. 수 년간 남편과 관계가 없었던 캐롤린(아네트 베닝)은 공허한 사랑 대신 장미 가꾸기와 부동산 중개업에 목을 매다 결국 외도를 하고 만다. 딸 제인(도라 버치)도 무관심한 아버지와 잔소리꾼 어머니의 모습에 진저리를 친다.

이 작품의 제목은 의미심장하다. 사전적 의미는 ‘고급스런 장미’. 그러나 샘 멘데스감독은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전형적인 미국 미인으로도 해석된다고 말한다.

아닌게 아니라 영화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극 중 레스터에게 장미나 다름없는 ‘딸의 친구’ 안젤라(미나 수바리)가 등장한 뒤 해체돼가는 그의 가족 모습이다. 레스터가 고등학교 치어걸로 있는 딸 제인을 보기 위해 농구장을 찾았다가 옆에 있던 안젤라에게 한 눈에 반해 버린 것.

감원의 위기에 처하자 직장을 나와 햄버거 가게에 취직한 레스터로서는 더 이상 잃을 게 없다. 그는 딸의 경멸스러운 눈길도 무시한 채 젊고 예쁜 10대 안젤라의 눈에 들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기울인다. 멋진 근육을 만들기 위한 웨이트 트레이닝과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 그리고 대마초까지 피워대면서.

이 작품은 지난달 골든글러브에서 작품 감독 각본 등 3개 부문상을 수상했고, 지난해 연말 인터넷 영화전문사이트인 IMDB가 네티즌들을 상대로 한 의 조사에서는 90년대 최고의 영화로 선정되기도 했다. 케빈 스페이시와 아네트 베닝의 연기는 그들이 아카데미 남녀주연상 후보로 지명된 게 당연할 정도로 인상적이다. 18세 이상 관람가. 26일 개봉.

▼감독 샘 멘데스는…▼

‘아메리칸 뷰티’의 샘 멘데스 감독(35). 할리우드는 지난해 이 작품이 개봉되자 찬사와 충격 속에 휩싸였다. 연극 연출가 출신인 그가 영화 데뷔작에서 흥행은 물론, 전미 영화학회 최우수작품상과 99년 LA비평가협회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평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기 때문. 그는 ‘식스 센스’의 M 나이트 샤말란 감독과 함께 재능있는 감독으로 부상했으며 아카데미 감독상의 유력한 후보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그는 영화 데뷔 이전에도 연극 무대에서 세계적인 연출자였다. 30대로는 최초로 영국 국립극장의 극장장 후보로 경합을 벌였을 정도.

영국 출신으로 캠브리지대를 졸업한 그는 92년부터 런던 ‘돈마 웨어하우스’ 극장의 예술감독으로 뮤지컬 ‘카바레’ ‘올리버’ ‘대소동’ 등을 연출하며 영국의 권위있는 연극상인 올리버 상을 받기도 했다. 특히 그는 ‘카바레’로 미국 브로드웨이에 진출, ‘베스트 리바이벌 오브 뮤지컬’ 등 토니상 4개 부문을 수상했으며, 지난해 영화배우 니콜 키드만 주연의 연극 ‘블루 룸’을 연출했다. 히트작 ‘오셀로’로 세계 순회공연을 하면서 98년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방한 공연을 갖기도 했다. 영화 감독 데뷔는 ‘카바레’의 시각연출에 반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적극적인 추천이 계기가 됐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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