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몸이야기]호흡기/허파꽈리에서의 가스교환

  • 입력 2000년 2월 17일 19시 40분


눈은 살아있다/ 죽음을 잃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김수영의 ‘눈’에서)

눈을 바라보며 가슴의 정화(淨化)를 노린 시인은 의학적으로 옳았다. 기침과 객담은 호흡기의 청소작업이며 이 과정을 통해 깨끗해진 폐가 백설(白雪)과 곧바로 ‘정신적 대화’를 할 수 있을 터이니까.

그런데 코와 입으로 ‘바깥바람’이 들어오면 목과 기관지에선 점액이 먼지입자를 걸러내고 이곳의 촘촘한 섬모들이 먼지투성이 점액을 아래에서 위로 쓸어올린다. 이 점액을 반사적으로 내뱉는 것이 기침이며 고인 점액, 즉 가래를 뱉는 것은 객담.

특히 기침을 할 땐 허파 속의 공기가 음속의 85%로 기도(氣道), 즉 숨길을 ‘쌩’하고 통과하면서 호흡기를 깨끗하게 만든다.

▽호흡기의 구조〓코 기관(氣管) 허파 등으로 이뤄지는데 여기서 기관은 ‘숨통을 쥔다’‘숨통을 끊다’고 할 때의 바로 그 숨통. 숨통의 어귀인 후두덮개는 숨쉴 때 열리고 음식이 인두로 넘어갈 때는 닫히는 ‘자동문’. 음식이 잘못 숨통으로 넘어오면 재채기로 ‘무단침입자’를 내쫓는데 이것을 ‘사레들렸다’고 한다.

공기가 나드는 길인 숨길은 코 목 등 상기도(上氣道)와 기관 기관지 세기관지 등 하기도로 나눠진다. ‘만병의 근원’ 감기는 바이러스 때문에 상기도에 염증이 난 것이다.

하기도의 숨통은 갈라져 두 개의 허파로 들어간다. 오른쪽 허파는 3개의 폐엽, 왼쪽 것은 2개의 폐엽으로 이뤄져 있으며 왼쪽이 작은데다 혈관의 구조도 복잡해 이식수술이 더 어렵다.

▽날숨과 들숨〓숨쉴 때는 허파를 감싸고 있는 흉곽의 크기가 변한다. 가로막과 갈비뼈근육의 신축에 따라 들숨 때엔 흉곽이 넓어지고 날숨 때엔 좁아지는 것. 남자는 가로막이 많이 움직이는 복식호흡, 여성은 갈비뼈근육이 주로 움직이는 흉식호흡을 하는 것이 특징.

사람은 평소 1분에 16번 정도 숨쉬며 한번에 500㎖의 공기가 드나든다. 최대로 공기를 들이마셨다가 내뿜을 수 있는 폐활량은 이보다 훨씬 많아 남성은 3500㎖, 여성은 2500㎖ 정도. 최근 도쿄마라톤에서 한국신기록을 낸 마라토너 이봉주의 폐활량은 보통사람의 1.7배로 알려져 있다.

의사들은 “폐 자체를 강하게 단련시킬 수는 없지만 달리기 속보 등 유산소운동을 하면 호흡시스템이 원활히 움직이게 되고 결국 폐활량이 늘게돼 건강에 좋다”고 말한다.

한편 뇌에서 호흡을 맡는 중추는 연수. 능숙한 백정이 소를 잡을 때 작은 망치로 양 뿔 사이를 내리쳐 한방에 숨을 끊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곳에 연수가 있기 때문이다.

▽가스 교환장〓허파엔 3억개의 허파꽈리가 빼곡한데 하나의 크기는 100∼200㎛. 합쳐서 펴면 100㎡로 체표면적보다 50배 넓으며 테니스코트 반 정도 넓이.

허파꽈리엔 실핏줄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 가스교환이 이뤄진다. 심장에서 온 혈액은 이곳에서 이산화탄소를 버리고 들숨을 통해 들어온 산소를 갖고 다시 심장으로 ‘회항’한다. 따라서 허파와 심장은 ‘이빨과 잇몸의 관계’일 수 밖에 없다. 심근경색증이나 심부전이 생기면 허파에서 심장으로 가는 혈액이 허파로 되돌아와 허파에 ‘홍수’가 나고 숨을 못쉬게 된다. 또 허파가 비실대면 심장의 무리로 이어진다.

▽신체 밖의 장기〓허파는 아늑한 곳에서 보호받는 다른 장기와 달리 공기와 직접 접촉하기 때문에 ‘신체 밖 장기’라고 불린다. 또 허파에는 코 숨통 등과 달리 방위능력이 없기 때문에 다른 장기보다 이식할 때 감염위험이 높다. 따라서 폐 이식의 성공률이 다른 장기보다 낮으며 제한된 경우에만 이식수술을 한다. 생체 폐이식의 경우 공여자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으므로 극히 드물게 시행된다.

폐 이식수술은 폐의 내부가 파괴돼 호흡할 수 없는 폐기종, 폐가 점점 딱딱하게 굳는 폐섬유증 등으로 숨이 차서 일상생활이 불가능하고 18개월 이상 살기 힘든 사람이 대상. 그러나 폐 공여자가 부족해 이식이 필요한 사람 중 3% 만이 혜택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도움말〓연세대의대 세브란스병원 호흡기내과 이준구교수, 고려대 안암병원 호흡기내과 인광호교수)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