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의 새영화]'플란다스의 개'/개죽고 죽이고…

  • 입력 2000년 2월 17일 19시 40분


도심의 한 아파트에서 생긴 강아지 실종사건. 이런 게 사건 축에나 낄 수 있나.

하지만 ‘지리멸렬’ ‘프레임속의 기억’ 등 수작 단편영화로 알려진 봉준호감독은 자신의 장편 데뷔작에서 생활의 평범한 단면을 잘라내 작고 주목할 만한 영화로 만들어 냈다.

박사학위 소유자이면서도 교수 자리를 얻지 못해 아내의 등에 얹혀 사는 30대 윤주(이성재 분)와 인생 자체가 심심한 20대 초반의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 현남(배두나).

개 짖는 소리에 예민한 윤수는 어느날 길에서 발견한 애완견을 납치해 다양한 살인 방법을 시도하다 지하실에 가둔다. 결국 운수나쁜 이 개는 경비원(변희봉)의 입으로 들어가고 아파트에는 개를 찾는 벽보가 여기저기 붙는다.

영화는 웃음 속에 ‘감춰놓은’ 메시지를 조금씩 풀어놓는다. 영화의 ‘바탕색’은 웃음이지만 교수직을 사기 위한 윤주의 ‘뇌물 케익’과 돈을 마련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둔 아내의 사연 등 세상살이가 쉽지 않은 소시민의 삶이 덧칠된다. 두 마리의 개를 죽음으로 이끌었던 윤주가 현남의 도움을 받아 아내의 개를 찾아나선 것도 인생의 아이러니다.

카메라는 아파트 윗층과 아래층, 지하실과 옥상을 수시로 오가면서 관찰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개미를 기르는 어린이용 생태관찰 교재처럼 아파트내에서 다람쥐 쳇 바퀴돌 듯 살아가는 소시민의 삶을 관찰하는 것이다.

하지만 돋보이는 아이디어와 감각에 비해 재미는 떨어진다. 코믹한 추격신과 경비원의 입담이 등장하지만 웃음도, 그 이면에 담으려는 ‘맛’도 넉넉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윤주가 왜 개를 살해까지 하는지 이유도 불분명하다. 12세이상 관람가. 19일 개봉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