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헌정사상 최초로 선거의 이해당사자가 아닌 제3자, 즉 시민단체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합법적인 낙선운동에는 더욱 무겁고도 깊은 의미가 부여된다. ‘공익을 등지는 정치’를 향해 새로운 ‘공익의 목소리’를 자임(自任)하는 시민단체가 합법적으로 정치의 질(質)을 비판 질타하고, 정치권의 잘잘못을 공개적으로 재단(裁斷)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낙선운동이 실정법에 어긋나는 ‘불법운동’일 때보다 시민단체의 책임과 의무가 더욱 막중해질 수밖에 없다.
낙선운동이 실정법에 어긋나지만 도덕성과 정당성의 기반을 바탕삼아 싸울 때는 무책임한 폭로로 인한 실수나 잘못, 허물이 유야무야 덮여질 수도 있다. 이를테면 경실련이 서둘러 167명의 명단을 발표했다가 시차를 두고 3명을 스스로 삭제, 공신력에 흠을 냈지만 ‘낙선운동의 물꼬를 튼 업적’으로 크게 비쳐질 뿐이다. 그러나 합법상태에서는 작은 실수라도 크고 심각한 반향을 부르게 되고, 그로 인한 인격 인권침해 명예훼손도 반드시 엄격한 법적 책임문제를 벗어 던질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이른바 ‘부적격자’ 명단을 내더라도 책임있게 내야 하고, 만의 하나라도 엉뚱한 피해가 나오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 다른 기관과 불필요한 갈등이나 마찰을 불러올 만한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 나아가 편파성 시비로부터도 자유롭고 공신력을 잃지 않도록 시민단체 스스로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가뜩이나 시민단체의 개념이 불분명해 향우회 종친회 동창회에 가면을 씌운 ‘사이비’ 시민단체도 나타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사이비’단체의 금품요구나 사이비 끼리의 비난전이 가열될 가능성도 높다고 하지 않는가. 야당이 ‘관변단체 이익단체나 유령단체’의 발호를 막는 선에서 낙선운동을 합법화하자고 하는 것도 비슷한 차원으로 보여진다. 헌정사상 첫 실험인 이번 운동이 혼란과 편파성 시비로 얼룩지면 NGO운동의 후퇴로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