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선대인/경실련의 '과욕'

  • 입력 2000년 1월 11일 21시 59분


경실련이 10일 공천부적격자 명단을 발표한 것은 ‘국민의 알권리와 올바른 정치적 판단을 돕기 위한’ 취지였다. 각 정당의 총선 후보자 선출이 ‘밀실’에서 이뤄지고 저질 국회의원에게 신물을 느껴온 국민감정을 감안하면 경실련의 행동은 충분히 납득할 만했다.

소위 부적격자 명단이 실린 경실련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이 폭주하고 경실련 사무실에 “잘했다. 성금을 내겠다”는 등의 격려전화가 잇달은 것도 다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같은 의미에도 불구하고 이번 명단 발표가 ‘졸속’이었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경실련은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된다. 자칫하면 사면초가에 몰릴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경실련은 10일 명단 발표직후 스스로 잘못을 인정해 명단을 2차례 수정했고 11일에도 “사실이 틀렸다”는 정치권의 항의가 잇따르자 한때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명단을 삭제하기도 했다.

동류(同類)인 다른 시민단체들마저 “시민단체가 우수의원으로 꼽은 의원까지 명단에 올린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항의하고 나서는 데에선 “얼마나 졸속작업을 했기에…”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경실련은 “평소 축적한 데이터와 언론보도를 20여일간 분석한 결과”라고 설명했지만 공천부적합기준을 정하며 여론을 수렴한 흔적은 별로 없다. 더욱이 그동안 “명단공개 같은 불법운동은 할 수 없다”고 공언해 온 터여서 갑작스러운 명단 공개의 배경도 아리송하다.

이럴 바에야 ‘시민단체 분열’이라는 비난까지 받아가며 300여개 시민단체가 결집한 시민연대에 불참한 이유가 무엇이었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경실련의 이번 행동은 결국 내분으로 추락한 위상을 일거에 만회하려는 ‘과욕’에서 빚어진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없지 않지만 아무튼 지난해 내분을 겪고 나서도 ‘어깨와 목에 힘을 빼야 한다’는 교훈을 경실련 관계자들이 깨닫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선대인<사회부> eodl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