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스탠더드 (16)]허술한 법망뚫고 외국위성방송 침투 확산

  • 입력 1999년 8월 5일 21시 30분


일본 도쿄(東京)에 본사를 둔 한국어 해외위성방송 동양위성TV(OSB)는 프로야구 시즌에 선동렬 이종범 이상훈이 활약하는 일본 주니치 드래건스 경기를 한국어로 생중계한다. 이 방송은 프로야구 경기가 없던 작년 겨울 하루 15시간씩 한국 시청자를 상대로 홈쇼핑 광고 방송을 내보내 국내 케이블TV 업체로부터 격렬한 항의를 받았다.

LG홈쇼핑과 39홈쇼핑은 느닷없는 경쟁자의 출현으로 아연 긴장했다. 케이블방송 중 가장 알짜라는 홈쇼핑방송을 내보내고 싶어 안달하는 다른 케이블TV 업체는 “국내 업체의 홈쇼핑 방송을 규제하면서 해외 위성방송은 왜 내버려두느냐”고 볼멘 소리를 했다.

OSB는 한국 정부의 항의를 받고 홈쇼핑 방송을 중단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 정부가 당시 OSB의 홈쇼핑 방송을 금지할만한 법적 제재수단은 없었고 지금도 없다. 재일교포가 운영하는 O

SB는 차후 한국 진출을 염두에 두고 정부의 요구에 순응했을 뿐이다.

세계 미디어 제왕인 루퍼트 머독은 작년 2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예방한 뒤 데이콤과 위성방송을 같이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사업계획 발표이후 1년이 훨씬 지나도록 위성방송 관련 법이 제정되지 않는 바람에 머독과 데이콤의 제휴는 사실상 물건너 간 것으로 보인다.

위성방송은 아무런 통관절차 없이 국경을 넘나든지 오래다. 한국이 위성방송 관련법을 놓고 표류하는 5년 동안 외국 위성방송의 전파는 가정과 영업장으로 자유스럽게 흘러들어온다. 한반도 상공에는 550개의 위성방송 전파가 흘러다닌다. 이중 300여개 채널은 지름 1.5m의 접시형 안테나로 수신할 수 있다. 현재 1000만명으로 추산되는 중계유선가입자와 케이블TV가입자도 해외 위성방송을 시청할 수 있다.

검찰은 6월초 일본 포르노 위성방송을 수신해 객실에 틀어주는 숙박업체를 적발했다. 해외위성방송이 얼마나 한국 사회 깊숙이 침투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밀수업자는 위성방송 수신기를 일본에서 몰래 들여와 수도권 일대 23개 여관과 가정집 사무실 등에 설치했다. 이들은 일본 현지거주자의 명의를 빌려 방송사에 등록하고 매달 수신료를 납부한 것으로 드러났다.

외국의 위성방송이 이처럼 깊숙이 파고들고 있는데도 정부는 이를 규제하고 교통정리할 호루라기조차 장만하지 못했다. 법률 미비로 국내 업체들은 위성방송 사업에 착수조차 하지 못했다. 한국통신이 95,96년 3500억원을 들여 발사한 무궁화1,2호는 제 기능을 못하고 헛바퀴를 돈다.

미국 캐나다 등 선진국들은 오래 전에 위성방송 관련법을 마련하고 위성방송업체들의 지적재산권을 적극 보호한다. 미국은 개인적으로 인크립션(위성방송의 무단 수신을 방지하기 위한 신호처리)하지 않은 위성방송을 수신하는 것을 허용한다. 다만 인크립션이 되지 않았더라도 숙박업체 레스토랑 등이 영업목적으로 위성방송을 수신하면 처벌한다. 캐나다는 해외 거주자 명의를 빌려 수신료를 납부하고 위성방송을 수신하는 이른바 ‘회색시장(그레이마켓)’도 금지한다. 캐나다는 97년 자국내에서 사업허가를 받지 않은 외국 위성방송의 수신을 불법으로 판정하고 미국 위성방송 수신 접시형 안테나 보유자와 캐나다 판매업자를 상대로 대대적인 단속을 벌였다.

위성방송에 대한 수요가 전세계적으로 늘어나면서 저작권료 징수문제가 새로운 문제로 떠올랐다. 미국의 직접위성방송업계(DBS)는 불법수신을 방지하는 제한수신시스템(CAS)의 일종인 ‘스마트카드’를 불법복제해 판매하는 이른바 ‘DBS 해적’ 때문에 골치를 앓는다. DBS는 97년 한해 동안 불법복제로 인한 피해액이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미국 디렉TV는 96,97년 미국 캐나다 버뮤다 케이맨제도 등의 DBS해적 29명을 고소했다.

국내 대부분의 유선중계업체와 케이블TV업체는 해외 위성방송을 수신해 가입자들에게 재송출하는 사업을 한다. 이는 위성방송을 무단 수신해 재송출함으로써 이익을 챙기는 영업행위로 미국 캐나다에서는 금지하고 있다. 해외 위성방송업체들이 위성방송 관련법조차 없는 한국을 상대로 수신료 징수에 나설 현실적인 방법은 없다. 해외 위성방송업체들이 가만히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일본 NHK방송 등 일부 해외 위성방송업체들은 한국에서 사업이 허용되면 수신료를 징수하기 위해 국내 시장을 사전 조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올들어 위성방송 불법수신이 기승을 부리는 아시아지역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아시아지역 케이블TV 및 위성방송협회(CASBAA)는 올들어 위성방송을 무단 수신해 가입자들에게 재송출하는 유선중계업체들을 상대로 저작권료 징수에 나섰다. 이 단체 S K 펑회장은 작년말 기자회견에서 “접시형 안테나로 위성방송을 개별 수신하는 행위는 용납할 수 있지만 위성방송을 불법 재송출해 이익을 챙기는 유선중계업체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말했다.

펑회장은 “한국 중계유선업체들의 위성방송 불법수신에 대해 아직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면서 “만약 한국 업체들이 불법수신한 위성방송으로 이익을 챙긴다면 바로 저작권 침해행위”라고 덧붙였다. 사실상 전국 중계유선업체들이 위성방송을 재송출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한국 업체들도 CASB

AA가 저작권료 징수에 나선다면 심각한 마찰이 예상된다. 다행스럽게도 CA

SBAA는 현재 한국 유선중계업체를 제외한 태국과 필리핀을 1차 징수대상국으로 지정했다.

〈이희성기자〉lee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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