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치인의 信義

동아일보 입력 1999-07-14 18:36수정 2009-09-23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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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약속은 무엇이고 또 신의란 무엇인가. 그동안 곡예를 하듯 줄타기를 해오던 DJP(김대중 김종필)간 내각제 실랑이가 결국 ‘연내 개헌 포기 합의’로 첫막을 내리는 것을 보고 가질 수밖에 없는 ‘감회’이다. 하기야 애초부터 DJP내각제 합의는 밀실에서 이루어진 그들만의 합의였다.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고는 해도 국민 다수에게 절박하게 다가온 이슈는 아니었다.

그러나 공동정권출범 이후 내각제 문제는 줄곧 정권 내부의 ‘뜨거운 감자’였다. 한쪽은 되도록 안쥐려고 하고, 다른 한쪽은 때만 되면 들이미는 형국이었다. 그러면서도 두 정치지도자는 ‘국민과의 약속은 지킨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런데 그 약속을 파기하기로 슬그머니 합의했다니. 애초 구경꾼의 입장이던 국민으로서는 어이없을 지경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제는 더이상 내각제문제를 ‘DJP 무릎대화’로 풀 일은 아니다. 일방적으로 시한을 정해 놓고 입도 벙긋 하지 말라고 다그칠 때도 지났다. 우선 연내 개헌을 연기하기로 했으면 연기 시점이 언제인지, 또 그때 가서는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분명한 일정표와 내용을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한다. 이와 함께 대(對)국민 공약사항을 파기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국민의 동의를 구해야할 것이다.

내각제 개헌에 찬성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DJP간 내각제 합의가 ‘밀실’에서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일단 국민에게 공약했던 사항인 만큼 이제는 군색하나마 ‘사정변경의 사유’를 공개하고 약속 불이행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이것은 정치지도자의 신의 문제다.

내각제 개헌은 나라의 권력구조를 바꾸는 중대한 문제다. 그런데도 그동안은 마치 DJP간 정치적 흥정이나 타협의 대상처럼 다루어져왔다. 내각제 연기 대신 총리의 권한을 실질적인 내각제 총리 수준으로 강화한다는 요즘 논의 등이 바로 그것이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내각제논란이 그동안 국정전반에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는 점이다. 줄곧 공동정권의 불화요인이 되었고 그로 인한 여―여 갈등은 정치 경제 사회 가릴 것 없이 모든 부문에 악영향을 끼쳐왔다. 특히 정치개혁은 내각제 논란에 발목이 잡혀 한걸음도 진전되지 못했다.

내각제 문제는 결코 몇몇 정치지도자나 정파의 권력분점이나 생존전략 차원에서 다루어질 문제가 아니다. 또 어떤 권력구조에도 장단점은 있다. 그런 만큼 이제는 철저히 공론에 부쳐 차분하게 논의해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내각제 개헌에 대한 정부의 일정부터 빨리 밝혀야 한다. 굳이 8월말로 ‘리미트(시한)’를 잡을 이유도 없다. 두 김씨는 자신들의 파워게임으로 더 이상 국민을 ‘바보’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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