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허승호/호황속 美 탐욕

  • 입력 1999년 7월 4일 18시 37분


97년 7월 아시아 경제위기가 시작되고 2년동안 온 세계가 고통을 당했지만 무풍지대가 꼭 한 군데 있다. 미국이다. 9년째 장기호황을 누리는 미국은 2일 다우존스공업평균지수가 1만1100을 넘으면서 사상최고기록을 또 경신했다.

아시아 위기로 미국경제도 침체할 것이라던 많은 경제학자들은 입을 다물고 있다. 그 대신에 미국은 아시아 위기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아시아 위기 ‘덕분에’ 호황을 누렸다는 새로운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 조지아주립대 도널드 라타재크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아시아 경제위기로 마땅한 투자처를 잃은 뭉칫돈이 안전한 시장, 미국으로 모여들면서 뉴욕증시를 떠받쳤다. 증시활황은 자산소득자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해 소비를 부추겼고 기업투자를 촉진했다. 아시아 경제위기로 수입 원자재 값이 폭락해 미국 물가가 연 2%수준에서 억제됐다. 뭉칫돈 유입으로 인한 달러강세도 수입가격을 낮춰 물가안정에 기여했다.”

달러화도 놀라운 강세다. 유럽단일통화인 유로를 사려면 올해 초에는 1.18달러를 줘야 했지만 지금은 1.02달러만 주면 된다.

경기가 지나치게 뜨거워지자 미국은 연착륙을 하겠다며 6월말 금리를 올려야 할 지경이 됐다.

정말 타국의 고통 덕분에 미국이 인플레 걱정 없이 성장을 만끽할 수 있었다면 이는 미국이 세계에 빚을 진 셈이다.

그러나 미국의 각 정파는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경쟁적으로 보호무역주의로 접근하고 있다. 한 여론조사에서도 미국민의 58%가 보호주의를 지지했다. 이것은 미국이 ‘세계경제의 기관차’라는 말에 걸맞지 않다. 미국은 내부 문제를 타국에 떠넘기기 보다는 호황의 과실을 어떻게 나눠가질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허승호<국제부>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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