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를 읽고]안전 불감증이 「수련원 참사」불러

  • 입력 1999년 7월 1일 23시 13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으로서 참으로 안타깝고 부끄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저는 현직 소방관입니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이같은 참사의 재발을 막기 위해 이번 화재의 문제점을 짚어보겠습니다.

첫째, 수련원에서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함께 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선생님들이 위급한 상황에서 아이들을 인솔했더라면 이처럼 많은 인명피해가 났을까요?

둘째, 화재 초동진압시 소화기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화재를 발견한 사람은 소화기를 사용할 생각도 못한 채 인근 수영장 물과 잠바를 벗어 화재를 진압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초기에 소화기를 사용하면 웬만한 화재는 거의 진압이 가능합니다.

셋째, 화재발생 후 1시간이나 늦게 소방서에 신고를 했습니다. 당황하고 다급했겠지만 화재 진압과 인명구조의 전문가인 소방관의 도움을 신속하게 받을 생각을 왜 못했을까요.

넷째, 화재경보기가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화재가 난 곳은 준공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시설관리를 얼마나 소홀히 하고 관심이 없었는지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다섯째, 교육시설에 대해서는 소방시설의 적용이 매우 느슨합니다. 소방법에 따르면 청소년 수련시설은 교육연구시설로 분류돼 건물 1개동의 연면적이 2000㎡가 되어야 자동화재탐지설비가 설치되고 3000㎡가 넘어야 옥내소화전설비를 설치하게 돼있습니다.

일곱째, 어린이를 수용하는 수련원의 건물이 컨테이너 조립식 건물이었습니다. 또 건물 양쪽에만 피난계단이 설치돼 있었습니다. 건물 양쪽 피난계단 사이의 복도 길이가 52m라니, 어린 아이들이 불길과 연기속에서 우왕좌왕하다 쓰러져 갔을 광경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직업상 화재 등 재난을 자주 접할 때마다 왜 우리는 안전에 대해 무방비 상태이며 쉽게 잊어버리는지 자괴감이 듭니다. 사고가 발생할 때만 사후약방문식 대책을 내놓고 시간이 경과하면 슬그머니 넘어가버립니다.

어린이들이 왜 이렇게 많은 사상자가 생겼느냐고 묻는다면 무어라 대답해야 할까요? 그 해답을 모르겠습니다.

노정엽(전주소방서 방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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