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정치 사이버혁명]힘얻는 전자시민운동

  • 입력 1999년 6월 30일 19시 59분


정치인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시민운동은 아무리 좋은 대의명분이 있어도 자금과 조직력의 부족으로 메아리 없는 외침에 불과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인터넷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미국에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수백개의 시민운동웹사이트가 생겨나 선거 등 정치과정에서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중 조안 블레이즈(43)와 웨스 보이드(39) 부부는 E―시민운동에 기념비적 업적을 남긴 인물들로 꼽힌다.

실리콘 밸리에서 교육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벤처기업인인 두 사람의 운명이 바뀐 것은 빌 클린턴 대통령의 섹스스캔들이 탄핵정국으로 비화될 무렵인 지난해 9월. 두 사람은 공화당이 스캔들을 조기에 끝내기를 바라는 국민의 뜻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략적으로 장기화하는 데 환멸을 느꼈다.

그들은 뭔가를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 ‘이제 클린턴을 견책하는 것으로 스캔들을 끝내고 다음으로 넘어가자’는 뜻에서 ‘www.moveon.org’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9월22일의 일이었다. 두 사람은 친지와 친구들에게 웹사이트 개설 소식을 알렸다.

블레이즈는 특파원과의 E메일 인터뷰에서 “처음 며칠 동안은 캠페인이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못가졌다”고 털어놓았다. 차츰 그들의 취지에 공감, 온라인 청원에 서명하는 사람이 늘더니 10일째인 10월1일이 되자 서명자가 무려 10만명으로 늘었다.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22일째인 10월13일에는 온라인 청원사상 최다기록인 25만명이 동참했다. 신이 난 블레이즈 부부는 더욱 조직적으로 캠페인을 전개했다. 시민들에게 온라인청원서를 의회에 발송하고 탄핵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의원들에게 20만통의 항의전화를 걸도록 촉구했다. 자신의 웹사이트에서 다운로드받을 수 있도록 제작한 50만장의 ‘Move On’스티커를 승용차에 부착하는 운동도 시작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명분과 단순명쾌한 운동방법의 효과적 결합이었다.

블레이즈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운동을 ‘반짝 캠페인(flash campaign)’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불과 89달러95센트(웹사이트 개설비용)로 1억명과 동시에 교신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언제든 순간적으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반짝 캠페인을 전개할 수 있다.”

공화당이 기어이 탄핵을 강행하자 블레이즈 부부는 캐치프레이즈를 ‘우리는 잊지 않는다’로 바꾸어 탄핵에 앞장선 의원들에 대한 낙선운동으로 성격을 전환했다. 이에 필요한 자금과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기 시작하자 지금까지 무려 1300만달러(약 156억원)의 기부와 70만시간의 자원봉사 서약이 쇄도했다. 시민운동 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블레이즈는 “모아진 자금과 자원봉사를 내년 선거에서 탄핵을 주도한 의원들의 경쟁상대에게 투입하는 형태로 탄핵주도 의원의 낙선운동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블레이즈 부부는 최근 컬럼바인고교 총기난사사건의 후속대책으로 나온 총기구입 규제 강화법안이 공화당의 반대로 부결되자 운동의 영역을 총기 안전으로까지 확장했다.

블레이즈 부부는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한명의 직원과 함께 이 모든 운동을 하고 있다. 블레이즈 부부는 본래의 직업도 포기하지 않았다.

블레이즈는 “이것이 바로 인터넷의 힘”이라면서 “인터넷이 보편화된 이후 민주주의는 예전의 민주주의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워싱턴〓홍은택특파원〉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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