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사형폐지운동

  • 입력 1999년 5월 26일 19시 37분


‘고의적 살인범은 사형에 처하는 것이 당연하다.’ 63년 윤형중(尹亨重)신부가 잡지 ‘동아춘추’에서 ‘처형대의 진실’이란 글을 통해 사형제도 논란의 불을 붙였다. 다른 이도 아닌 성직자가 사형을 옹호한 것이 큰 파문을 일으켰다. 서울지법 소년부지원장이던 권순영(權純永)판사가 즉각 반격했다. 이 논쟁에는 뒤에 강원룡(姜元龍)목사도 가세해 화제를 모았다. 우리나라의 첫 사형제도 공개논쟁이었다.

▽사형제도의 역사는 기원전 18세기 바빌론 왕조의 함무라비 법전으로까지 올라간다. 이 법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해보복(同害報復) 사상으로 유명하다. 고조선의 8조금법(八條禁法)도 같은 정신을 담고 있다. 사형제도는 인류역사와 함께 이어 온 셈이다. 사형방법으로는 고대 그리스 로마의 참수형(斬首刑)이 시조격. 이는 프랑스에서 1789년 대혁명후 ‘기요틴’을 낳기도 했다. 우리 역사상 참형(斬刑)은 1894년 고종의 칙령으로 사라졌다.

▽어떤 방법을 쓰든 사형집행은 참혹하다. 89년에 맺은 유엔의 사형폐지조약은 큰 전기가 됐다. 그후 사형을 사실상 없앤 나라가 총 1백5개국으로 급증, 남은 90개국보다 많아졌다. 문명권에서는 한국 일본 정도가 사형제도를 두고 있다. 유럽엔 사형 존치국이 거의 없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사형이 ‘필요악’이라는 입장에 서 있다. 96년 국민감정 등을 이유로 내린 합헌결정이 그것이다.

▽사형폐지운동협의회(회장 이상혁변호사)와 천주교는 앞으로 사형폐지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일 계획이다. 사형은 인간존엄성과 생명권을 침해하고 범죄억제 효과도 의문이며, 인간이 하는 재판은 항상 오판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근거로 한다. 사형은 가족 친지들에게도 참기 어려운 고통을 주는 ‘또다른 살인’이 된다는 호소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오늘 오후2시 한국프레스센터 20층에서 열리는 사폐협 창립10주년 세미나가 관심을 끈다.

육정수<논설위원>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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