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안병준/中日정상회담과 4강의 역학

  • 입력 1998년 12월 2일 19시 27분


중국의 국가주석으로는 최초로 일본을 방문한 장쩌민(江澤民)주석은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평화와 발전을 위한 우호협력 파트너십’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 문건에서 일본은 과거사에 대한 사죄를 거절하여 중국의 반발을 샀다.

그런데도 장―오부치 회담은 지난 3년동안 미―일―중―러간에 개최되어 왔던 정상회담 중 절정을 이루었고 이 결과 4강간에는 ‘느슨한 균형’이 형성되고 있다. 이는 바로 한반도의 전략환경을 형성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그 함의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 동북아지역 패권 경쟁 ▼

이번 중일 정상회담은 양국간의 협력과 경쟁의 한계를 잘 나타냈다. 수교26주년과 평화조약 20주년을 맞아 오부치총리는 장주석을 초청하여 중국과 과거사를 매듭짓고 아시아에서 미래지향적 동반자관계의 출범을 기도했다. 작년에 발표한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대만에까지 적용할 것을 심각하게 우려해온 중국에 일본은 그것이 지역안정을 위한 방어적 조치라고 설득해 왔다.

중국은 일본이 이 협력의 일환으로서 군사력을 일본 외에까지 투사하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 동시에 중국은 일본 차관의 최대 수혜국 위치를 계속 향유하기 위해서도 일본과 협력해 왔던 것이다. 그러면서 장주석은 오부치총리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한 것과 같이 과거침략에 대하여 문서화한 사죄를 기대했던 것이다.

이 요구를 거부한 일본과 이에 대한 중국의 반응은 양국의 국내에서 일고 있는 정치와 민족주의 감정을 그대로 반영하며 크게 보아서는 세력다툼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식민통치한 한국에는 사죄했지만 주권국가와 교전한 중국에는 ‘반성’만 표시한다는 것이 일본측의 논리다. 현재 아시아가 겪고 있는 외환위기에서 일본보다 우세한 국력을 과시한 중국은 이러한 일본의 역사 인식을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대만에 대하여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인 일본의 태도에 분노했다. 유사시 일본은 미국과 방위협력을 하기 위해서도 중국의 요구를 다 들어줄 수는 없었다. 이와 같이 전략적 차원에서 일본과 중국은 아시아에서 지역패권을 잡기 위해 경쟁하고 있으며 이것은 장기화할 것이다.

이처럼 아시아에서 강대국들이 양자관계를 개선하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세력균형 행동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먼저 미국이 96년에 일본과 ‘신안보선언’을 하여 안보역할분담을 약속했고 97년 ‘신방위협력지침’을 발표한 뒤에야 중국과 정상방문을 교환하여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협상했다.

중국이 대만과 한반도 등 지역문제와 경제현안에 대하여 건설적으로 협력한다면 미국은 중국과 포괄적 동반자관계를 확대하고 반대로 군사위협을 보인다면 그것을 일본과 함께 봉쇄한다는 사실상 조건부 포용정책을 실시해 왔다.

중국도 95, 96년 대만해협에서 미국과 군사대결을 겪은 뒤 국내 경제개혁과 대만독립억제를 위해서 미국과 공동이익을 모색하기로 결정했다.

한편 중국은 러시아 및 일본과도 제휴하여 미국의 독주를 견제하려는 세력균형정책을 잘 구사해 왔다. 이에 동조하는 러시아는 국내경제 및 정치가 취약하여 아시아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미일 미중 중일간에 정상들은 앞으로도 정규적 회담을 갖기로 약속했으니 사실상 미일중 3각관계가 아시아 질서를 주도하고 있다. 이렇게 느슨한 4강균형이나 자못 긴밀해진 미일중 3각관계는 모두 양자관계를 통하여 재편되고 있으며 아직도 그들간에 협의체나 집단 또는 다자 안보제도는 결여되어 있다. 그 근본 이유는 유럽과 달리 아시아에서는 역사와 가치에 대하여 공동인식이 미비하고 도리어 영토분쟁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 견제-균형관계 활용을 ▼

이렇게 미―일―중―러간에 견제와 균형이 작용하고 있으며 어느 국가도 패권을 행사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중에서 미국만이 효과적으로 아시아에서 안정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할 필요가 있다. 가령 미국이 동북아에서 군사력을 모두 철수해 버린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한번 상상해 보자. 중일간에는 현재 표면화하고 있는 갈등이 더욱 노골화할 것이고 심지어 군비경쟁도 가열될 것이 뻔하다. 이미 일본은 북한이 발사한 탄도미사일에 대비하기 위하여 이른바 ‘전역미사일방어(TMD)’체제연구에 착수했는데 이에 중국은 크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4강들의 이해가 교차하고 있는 한반도에서 4강들은 안정과 비핵화를 원한다. 이것을 남북당사자들간에 직접 협상하자는 한국의 입장에 미국은 물론 중국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대4강 외교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안병준(연세대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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