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이너 리그 (26)

입력 1998-11-18 19:30수정 2009-09-24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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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정 (反政)③

조국은 애초부터 관심 없었던 공학도의 길을 기꺼이 작파하고 전문대학에서 사진을 공부한 뒤 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의 무보수 조수 노릇을 하는 중이었다. 사진이야말로 자신의 혼을 바칠만한 진정한 예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인생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고등학교를 자퇴했을 때처럼 이 말이 사실이 아님을 간단히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조국이 스승으로 모시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는 아프리카 오지 같은 데에 한두 달씩 들어가 살며 사진을 수십 롤씩 찍어서 나오는, 탐험가를 겸한 사진작가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보이스카웃이었다는 말도 있었다. 조국이 원하는 것은 뻔했다. 그의 가슴에는 여전히 세계를 향한 사나이의 야망이 불타고 있었던 것이다.

승주가 직장에 첫 출근을 하던 날에도 우리는 모여서 술을 마셨다. 그때만 해도 승주의 새 직장으로의 출근이 그렇게 잦을 줄 몰랐으므로 기념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너같은 놈이 취직을 하다니 현주누나가 돈 들여서 대학 보낸 보람이 있구나.”

조국의 그 말은 현주누나가 등록금을 댔다는 뜻은 아니었다. 대학입시 때 승주가 현주누나에게서 시간당 3백원씩 받고 과외를 받았던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승주의 첫 직장은 소규모 놀이공원을 운영하는 한 회사의 개발팀이었는데 그 역시 현주누나가 적극적으로 나선 덕분에 애인의 사촌의 사돈의 옆집 아저씨의 친구의 소개로 마련된 직장이었다.

마지막에 인연이 걸쳐진 친구라는 사람이 바로 승주의 직속 상관인 허 대리였다. 허대리는 일년 중 반 이상을 외국에서 보냈다. 그가 하는 업무란 세계 각국의 위락시설을 돌면서 새로운 종류의 놀이기구를 타보고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알아보는 일이었다. 자기의 입에서 저절로 ‘어라, 재밌네?’ 하는 말이 나오면 바로 기획서와 보고서를 올린 다음 그것을 주문하고 계약서를 썼다. 그리고 선물을 주고받고 악수를 하기만 하면 되었다. 승주는 그런 일이라면 만능 엔터테이너로서의 자신의 적성에 맞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외국에서 걸려오는 허 대리의 전화와 텔렉스 받는 일을 지겨워하다가 1년도 안 돼 다른 직장으로 옮겼다.

조그마한 오퍼상에도 들어갔고 잡지사의 영업부에서도 일했지만 승주의 주된 직업은 ‘사업구상업’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영업부 시절을 ‘화류계 생활’이라고 지칭하는 그는 한때 화류계 경력을 밑천 삼아 술집을 차리겠다고 설쳐댔다. 당시 술집에 뿌리는 돈이 적지 않았던 그는 술집이야말로 소질도 살리고 돈을 쉽게 버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글: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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