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스탠더드시대 36]자선-기부-후원금

  • 입력 1998년 11월 10일 19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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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뉴스전문 케이블TV CNN창설자인 언론재벌 테드 터너는 지난해 10억달러(약 1조3천억원)를 국제연합(UN)에 기부하겠다고 약속, 세계를 놀라게 했다.

식품유통회사 아메리칸스토어스의 스케그스 전회장,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회장 등 내로라 하는 미국의 갑부들은 자선가 랭킹의 선두그룹에 들어있다. 그리고 세간의 존경을 받는다

정부 사회복지의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민간의 자선.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사회적 재분배를 통해 계층간 갈등을 줄이는 기능도 한다. 미국의 부유층은 이같은 자선활동에 마치 경쟁하듯 나선다. 그렇다고해서 자선이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특별한 것’은 아니다. 96년 타계하면서 43억달러(약 5조7천억원) 상당의 주식 등을 사회사업에 쓰도록 기부해 화제를 모은 휼렛 패커드사의 데이비드 패커드회장. 창업 첫해엔 이익을 한푼도 내지 못했지만 기부금으로 5달러를 낸 기록이 남아있다.

미국내 97년 기부금 총액은 96년보다 1백억달러 늘어난 1천4백35억달러(현재 환율로 약 1백88조원). 그중 85%인 1천2백19억달러(약 1백60조원)가 개인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다. 자선문화가 발달해있는 미국 영국 등에서는 국민의 70% 이상이 정기적으로 자선성금을 낸다.

우리나라 국민의 자선액수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다. 적십자회비 이웃돕기성금 및 각종 사회복지시설 후원금 등을 합한 지난해 모금액은 9백76억원. 보건복지부 복지자원과 이상인(李相仁)사무관의 설명.

“사회복지관련 모금액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경제상황이 나빠질수록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죠. 그래서 올해 역시 지난해에 비해 모금액이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참여자가 예전보다 늘어났지만 아직은 활발하지 못한 수준이란 평가를 받는다. 의료봉사기관 글로벌케어의 양용희(梁龍熙)사무총장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국민이 남을 돕는 데 인색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자선을 장려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들이 전혀 갖춰져있지 못한 때문이지요.”

그가 지적하는 첫째 문제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민간의 자선모금에 대한 규제. 기부금품모집규제법은 모금비용이 기부금의 2%를 넘지 못하게 규정하고 있다. 대개 모금액의 5∼20%를 비용으로 지출하는 현재의 각종 모금은 불법이 되고 만다.

또 적십자회비 등 관(官)주도 성금이 국민의 자발적인 자선참여를 막아왔다는 주장도 나온다.

외국의 경우를 자세히 살펴보자. 외국의 자선단체들은 단순한 호소를 넘어선 전략적인 모금마케팅을 꾸준히 개발해왔다. 미국 공동모금회(United Way)의 경우 전국풋볼리그를 통해 매년 5천만달러(약 6백50억원)이상을 거둬들인다. 특정기업의 사주 또는 노조와 협의하에 직원 월급 중 우수리를 떼어내 ‘푼돈 모아 목돈’을 마련하는 단체도 있다. 국민의 일상생활에 파고드는 모금방식도 자리잡았다. 독일에서는 은행 교회 관청 등에 각종 자선단체의 모금용지가 비치돼있다. 영국에서 매주 토요일은 ‘플래그 데이(Flag Day)’. 허가받은 자선단체들이 거리곳곳에서 모금에 나선다.

미국에서는 자선단체와 기부자를 연결해주는 인터넷사이트도 생겨 기부자는 온라인상에서 크레디트카드를 통해 간편하게 돈을 보낼 수 있다.

외국의 경우 자선단체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상당한 수준. 독일에선 민간단체가 모금한 액수의 9배를 국가가 보조하는 경우도 있다. 자선단체의 우편물 발송비용을 깎아주거나 광고비 일부를 대주는 등 측면지원도 한다.

기부자에 대한 세제혜택도 자선을 장려하는 중요한 요소. 미국은 기부액만큼 소득의 최고 50%까지, 일본은 소득의 25%까지 소득공제 혜택을 받는다. 우리나라는 법정기부단체에 낸 기부금은 전액, 민간에 낸 기부금은 일부를 근로소득의 5%까지만 소득공제해주는 정도다.

선진국에선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자선단체에 넘긴다고 유언하는 사람도 많다. 미국의 경우 상속세율(18∼55%·한국은 10∼45%)이 높은 편이고 과세가 엄격한 것도 한몫을 한다. 미국의 97년 총기부금 중 개인의 유증(遺贈)이 8.8%를 차지해 기업의 기부금(5.7%)보다도 많았다. 사회적 분위기도 자선을 촉구한다. 돈을 많이 번 사람이 자선을 하지 않으면 ‘돈벌레’로 낙인찍힌다는 것. 그렇다고 해서 기부 사실을 떠벌리지는 않는다. 미국에서 공항면세점을 운영하는 찰스 피니가 총 41억달러(약 5조4천억원)를 자선재단에 기부한 사실은 지난해 면세점 매각소송 과정에서야 비로소 밝혀졌다. 그는 자선활동을 철저히 숨기기 위해 15년간 기부금에 따른 막대한 세금 혜택마저 포기해왔다.

<윤경은기자〉ke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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