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회는 국민의 분노 정녕 모르는가?

  • 입력 1998년 8월 11일 19시 01분


국회를 향한 국민의 분노가 위험수위를 넘어 범람하고 있다. 일부 시민들이 여야간부를 직무유기죄로 고발한 데 이어 시민단체는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국회의원 세비 가압류신청을 냈다. PC통신에는 국회를 어떻게 해버리자는 섬뜩한 주장이 거침없이 오르내린다. 그럴 만도 하다. 엄청난 폭우로 수백명이 목숨을 잃고 조(兆)단위의 재산피해가 생긴 데다 화급한 추가경정예산안과 2백92개 법안이 쌓여 있는데도 국회는 여전히 놀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는 국민의 치솟는 분노를 아는가 모르는가.

어제 여야는 의장선출 8일만에 국회 본회의를 열어 재해대책특위 구성을 결의하고는 다시 헤어졌다. ‘노는 국회’에 대한 비난여론을 모면하기 위해 ‘반쪽 정상화’의 시늉만 했다. 재해대책특위만으로는 계류안건을 처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수해복구를 뒷받침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이래서는 안된다. 여야는 국회를 즉각, 그리고 완전히 정상화해야 한다. 국무총리 임명동의안 처리와 상임위 구성을 오늘이라도 마치고 계류안건 심의에 들어가야 한다. 특위구성과 몇푼의 수재의연금 갹출로 국민 분노를 달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국민의 요구는 국회가 제 할 일을 다하라는 것이다.

이번 국회공백에는 한나라당의 책임이 크다. 한나라당은 의장경선 패배에 반발해 대여(對與)대화를 중단한 지 일주일만에 원내총무를 새로 내고 여야협상을 재개했다. 게다가 ‘선(先) 총리인준안 처리―후(後) 상임위 구성’이라는 여야합의도 뒤집었다. 합의를 번복한 것은 분명히 잘못이다. 그러나 여당도 언제까지나 잘잘못만 따지려 해서는 안된다. 잘잘못의 판정보다는 국회정상화가 훨씬 급하다. 국회가 국민의 지탄을 받는데 여야가 따로일 수는 없다. 기왕 이렇게 됐으니 총리인준안 처리와 상임위 구성을 한꺼번에 타결할 수밖에 없다.

상임위원장 배분을 둘러싼 여야의 줄다리기도 한심하다. 여당은 책임있는 국정운영을, 한나라당은 다수당의 국회주도를 위해 핵심 상임위원장을 자기쪽에서 맡아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 눈에는 노른자위 상임위원장을 차지하려는 ‘밥그릇 싸움’으로 비칠 뿐이다. 하물며 이재민에게 그런 싸움이 무슨 의미를 갖겠는가. 상임위원장 배분은 빨리, 그리고 조용히 끝내야 한다.

국회가 이대로 가다가는 국민분노가 어디까지 치달을지 심히 우려된다. 국회파행이 계속되면 민심은 언젠가는 폭발하게 될지도 모른다. 여야는 이것을 직시해 국회기능을 당장 회복해야 한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만이 아니다. 국회 자체의 존립을 위해서도 시간이 없다. 국민분노의 범람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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