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신탁 비리 수사]로비자금 10억 어디갔나?

  • 입력 1998년 7월 20일 19시 10분


20일 검찰수사결과 드러난 부동산투자신탁회사 비리는 주인이 없는 정부투자기관의 모순과 한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부동산신탁제도는 자금과 경험이 없는 땅주인이 땅을 부동산 신탁회사에 맡기면 신탁회사가 이를 담보로 자금지원과 개발 임대 분양 등을 대신해 주고 수익을 땅주인에게 되돌려주는 제도.

94년 국토의 효율적 이용을 명분으로 정부투자기관인 한국감정원과 성업공사가 ㈜한국부동산신탁과 ㈜대한부동산신탁을 자회사로 설립하면서 도입됐다.

그러나 이들 부동산신탁회사의 임직원들은 이같은 설립취지와는 달리 쓸모없는 땅을 떠안고 부실 시공회사에 거액을 멋대로 대출해주면서 부실 경영을 일삼았다. 이로 인해 이들 회사는 1조3천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빚을 지고 부도위기에 몰렸고 이는 곧 금융기관의 부실로 이어졌다.

한국부동산신탁의 경우 김영삼(金泳三)정부 출범과 함께 당시 실세 정치인이었던 S의원 보좌관 출신의 이재국(李載國)씨가 사장으로 부임한 것 자체가 문제였다.전문성도 없는 상태에서 낙하산식 인사로 부임한 이전사장은 95년 10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아무런 채권 확보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 경성그룹에 7백59억원을 특혜지원해줬다.

경성측은 이 돈을 부동산 개발사업과는 상관없이 자신들이 이전에 불법대출받은 돈을 갚는데 써버렸다. 경성측은 결국 경기 고양시 탄현 등 3곳에서 ‘본업’인 아파트와 상가건축을 하다가 자금난을 견디지 못해 부도났고 이로 인해 한국부동산신탁은 지원금을 모두 떼이게 됐으며 아파트 분양신청자와 하청업체들도 피해를 보게 됐다.

수사 초기 정치권과 업계에는 옛 여권의 S, K의원과 현 여권의 K의원, L전의원 등이 S의원 보좌관 출신인 이전사장에게 청탁과 압력을 행사해 경성그룹에 특혜지원을 하도록 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경성 이재학(李載學)사장이 현태윤(玄泰潤)씨 등 부동산 브로커 4명에게 10억7천만원을 주고 로비자금으로 사용하도록 한 사실을 밝혀내 정치권 의혹의 단서가 풀릴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그러나 이 돈의 사용처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현씨 등이 사과상자에 담긴 현금 10억원을 받아 호텔 등에서 점당 10만∼20만원의 고스톱판을 벌여 한달만에 5억원을 탕진하는 등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으며 로비자금으로 사용한 증거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또 ㈜경성 이사장이 중앙상호신용금고의 한국부동산신탁 계좌에서 빼낸 50억원의 사용처도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결국 검찰의 수사결론은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의 부동산신탁회사 사장이 부실시공업체에 엄청난 돈을 지원해 줬다가 떼였는데 그 과정에서 업자들에게서 돈을 받거나 정치인들의 청탁 또는 압력을 받았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는 것으로 이는 쉽게 믿기 어려운 결론이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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