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상용/金대통령 방미후 한국경제 과제

  • 입력 1998년 6월 14일 19시 48분


김대중대통령은 두 번 자신의 생명을 구해주고 6년간 망명처를 제공한 미국을 흡사 금의환향하듯 방문했다. 금의환향이라는 표현에 걸맞은 훌륭한 성과도 거두었다. 지금은 국제적인 신뢰회복이 경제회생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시점이다. 김대통령은 강한 개혁의지를 천명했고 미국의 정계 재계 언론은 퍽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 결과 미해외민간투자공사의 대한투자보증사업 재개, 세계은행과 미수출입은행으로부터 각 20억달러의 차관 유치, 재정적자 확대와 금리인하에 대한 국제통화기금(IMF)의 양해 등 가시적인 성과도 있었다.

▼ 게임의 룰 안지켜 좌초 ▼

그러나 개혁실행 여부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듯한 모습 또한 뚜렷하다. 그 이유와 해결책은 무엇인가. 김대통령이 방미를 마치고 귀국하던 시간인 14일 새벽, 온 국민이 밤잠을 잊은 채 지켜본 멕시코와의 월드컵 축구경기에서 한국은 참담하게 패했다. 축구경기와 한국경제의 모습은 어찌 그렇게도 흡사하던가. 여기에서 김대통령은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축구경기의 참패원인은 한마디로 우리 팀의 반칙이었다. 선수들이 열심히 뛰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는 상대 선수의 도움을 얻는 운이 있었기에 선취골을 얻었다. 그러나 우리 팀은 이번 월드컵에서 새로 채택된 ‘백태클 금지’라는 게임의 룰을 어겼다. 국제심판은 반칙에 대한 엄벌로 하석주선수를 퇴장시켰고, 그후 전개된 경기 내용은 씁쓸하고 안타까울 뿐이었다.

우리 경제의 모습도 비슷하다.물론 국민이 열심히 일하기도 했지만 냉전시대의 ‘한국 봐주기’ 논리와 3저(三低)경기라는 운(運)에 힘입어 국민소득 1만달러의 수훈을 세웠다. 그러나 냉전종식과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으로 새로운 국제정치경제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게임의 룰’도 바뀌었다. 폐쇄경제하에서 우리끼리 적당히 정한 게임의 룰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다.

개방경제로 이행하는 것이 불가피한 글로벌 시대에는 국내에서도 외국인과의 거래가 일어난다. 그러므로 국제거래에서는 물론이고 국내의 기업경영이나 국가경영에 있어서도 국제적인 정합성에 맞는 게임의 룰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새로운 게임의 룰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상호채무보증, 무분별한 대출, 과다차입과 과잉투자, 불투명한 경영, 정경유착의 고질적인 반칙을 계속 범하다가 결국은 경제시합의 국제심판관인 해외투자가들로부터 반칙퇴장을 선언받는 형국에 빠진 것이 아닌가.

우리팀의 월드컵 경기가 아직은 끝나지 않았듯이 한국의 경제전도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무엇이 과제인가. 차범근감독의 일차 과제는 선수들에게 새로운 게임의 룰을 주지시켜 반칙행위를 차단하는 일이다. 김대통령의 당면 과제 또한 정치인 관료 대기업 금융기관 노조에 새로운 게임의 룰을 주지시키고 이 국난의 와중에서도 이들이 범하고 있는 반칙행위를 차단하는 일이다.

특히 ‘성공자득 실패타실(成功自得 失敗他失)’현상을 칭하는 도덕적 해이는 중대한 반칙이다. 대마불사를 외치며 중화학 공업분야에 엄청난 과잉투자를 했던 대기업들이 조선 등 일부 사업에서 번 돈을 부실계열사에 변칙으로 투입하는 등의 반칙을 아직도 범하고 있다. 은행은 부실기업을 판정하라니까 담보가 있는 기업만을 선정하는 반칙을 범하고 있다. 노조도 실업대책의 요구를 뛰어넘어 불법파업을 시도하는 반칙을 생각하고 있다. 공무원은 노란카드감인 복지부동의 반칙을 넘어서 아예 빨간카드감인 신토불이의 반칙을 작정하고 있다.

▼ 경제주체 반칙 근절을 ▼

김대통령은 민주적 시장경제로 가기 위한 구조조정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 금융 노동 공공부문의 반칙행위를 차단하지 못하면 구조조정도 없고 시장경제도 없으며 민주주의도 없다. 이 모두 김대통령의 정치적 역량을 시험하는 과제들이다. 김대통령은 5년 후에도 금의환향하듯 미국을 방문할 수 있을 것인가.

박상용<미뉴욕대초빙교수·연세대 경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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