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봉순이 언니(30)

  • 입력 1998년 6월 1일 07시 29분


―그나저나 얘, 너희 엄마가 정말 병식씨한테 세탁소 차려서 봉순일 시집 보낸다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미자언니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병식씨는 그럴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눈치던데….

그날 밤, 방에서 마악 잠이 들려고 하는데 봉순이 언니가 부스스 일어나는 게 느껴졌다. 봉순이 언니는 일어서려다 말고 제 얼굴을 내게 가까이 가져다 댔다. 이번에는 언니를 보내지 않으려고 자는 척하고 있었던 내가 반짝 눈을 떴다. 당황스런 언니와 내 눈이 마주치자 잠시 망설이는 듯, 언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언니 금방 나갔다 올게, 짱아가 눈 꼬옥 감고 있으면 금방 올껴

―거짓말.

―정말이라니까.

―거짓말!

나는 더 이상 혼자 잠들고 싶지 않았다. 언니는 처음으로 내게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너 자꾸 말 안듣고 그러면 거시기 할아버지가 잡으러 온다.

―잡아먹으러 오라지, 망태 할아버지가 오면 시방 잠 안자고 돌아댕기는 언니부터 잡아먹을 걸.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언니를 노려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봉순이 언니가 이야기하는 망태 할아버지도 무서웠지만 혼자 잠들었다 깨어났을 때, 요괴인간의 손끝처럼 뻗어나간 나뭇가지의 검은 그림자나 천장을 뚫고 솟아나올 것 같은 새파란 얼굴보다는 덜했다. 봉순이 언니는 내가 전에 없이 강경하고 슬픈 표정을 보이는 것을 보고는 마음이 좀 심란해진 모양인지, 얼마전 가발장수의 권유에 못이겨 단발로 자른 머리에 가는 빗으로 후까시를 넣다 말고 잠시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오늘 딱 한번 만이다. 그럼 언니랑 같이 가는겨, 대신 이건 이세상 누구한테도 비밀로 해는 거여. 알았지?

―좋아.

나는 러닝과 팬티만 입은 채로 누워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대충 아무 옷이나 꿰어 입고 언니를 따라 나섰다. 아버지를 따라 시내로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도 그렇게 즐겁지는 않았으리라. 골목길 계단에는 인적이 드물었고, 늦게 귀가하는 남자들을 만나면 봉순이 언니는 될 수 있는대로 고개를 숙인 채로 몸을 바싹 담쪽으로 붙인 채 걸어갔다. 길 아래쪽 버드나무가 서 있는 뒤편에 공동수도가 있고 그 수도를 관리하는 조그만 상자같은 가건물 앞에서 언니는 나를 데리고 서 있었다. 밤하늘이 낮게 내려앉아 별들도 보이지 않는 밤이었다. 공동수돗가 옆이어서인지 사방이 눅눅했고 쿰쿰한 하수도 냄새가 났다.

<글: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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