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 정부는 정치적 양해로 일단락지었지만 한국 국회와 언론은 계속 물고늘어졌다. 그러나 도덕정치와 인권을 내걸고 등장한 카터대통령마저 입을 열지 않았다. 미 국가안보국(NSA)은 ‘도청국’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각국 국가원수 집무실을 도청해 백악관에 보고하는 기구로 유명하다. 국가간 첩보의 세계에는 합법 비합법의 구별이 없다. 적과 우방도 없다. 오직 국익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미국도 국내에선 통신의 비밀 침해를 중대하게 다룬다. 닉슨대통령의 사임도 발단은 야당선거사무소 도청사건이었다. 우리도 법률상으로는 엄격한 규제를 하게 돼 있다. 헌법이 사생활과 통신비밀을 보장하고 있고 93년엔 통신비밀보호법이 제정됐다. 이 법은 수사와 범죄예방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 수사기관에 감청(監聽)을 허용하고 있다. 감청에는 법원영장이 반드시 필요하다. 불법감청 결과는 재판증거로 쓸 수 없다.
▼문제는 ‘긴급사유’가 있는 경우. 이런 때는 감청을 일단 시작하고 48시간 내에 사후 영장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이를 남용하면 누구나 감청당할 위험이 있다. 전화감청은 95년 1천7백94건, 96년 2천4백43건, 97년 6천2건으로 급증 추세다. 불법감청은 96년 51건에서 97년 3백93건으로 늘었다. 일반인간에도 불법도청이 판치고 있는 마당이니 이러다 ‘도청왕국’이 되지 않을까 두렵다.
육정수(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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