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권순활/섣부른 日문화 조기개방론

  • 입력 1998년 5월 10일 19시 58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언급 이후 일본 대중문화 조기개방론이 정부방침으로 굳어져가고 있는 듯하다.

상대방인 일본의 반응은 어떨까. 상당수 일본인, 특히 우익세력은 “드디어 한국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시작했다”며 의기양양해하는 분위기다.

이 때문인지 한국에 호감을 가진 한 일본인은 “한국정부가 일본 대중문화 조기개방과 일왕방한문제를 왜 먼저 꺼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의아해했다. 일본이 간곡히 요청할 때 넌지시 받아들이는 형식을 취하면 될텐데 먼저 나서서 활용할 카드만 잃고 있다는 것.

‘일본문화가 개방돼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한국정부의 호언도 검증이 필요한 부분이다.

일본문화를 본격 개방한 동남아 몇몇 나라는 문화적으로 ‘일본 식민지’나 다름 없다. 일본가요팬이 많은 홍콩의 경우 일본가수의 공연 때면 입장권이 매진되며 일본 포르노영화와 TV위성방송의 드라마도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문화계는 문만 열리면 한국도 일본문화권의 우산 아래 들어올 것으로 낙관한다. 동남아에 비해 문화적 동질성이 강한데다 일본 문화산업의 경쟁력은 한국에 크게 앞서 있기 때문이다. 문이 닫힌 상태에서도 일본만화 ‘슬램덩크’와 일본영화를 베낀 ‘백한번째 프로포즈’가 히트하며 소설 ‘실락원’의 영화판권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대중문화 교류의 창을 열려는 선의(善意)를 일본에서 왜곡해서 해석하는 것을 보면 씁쓸하다.

“일본문화 조기개방론을 보면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어설픈 자신감입니다. 일본대중문화가 한국사회에 미칠 영향이 그렇게 간단하겠습니까.”

재일(在日) 한국인 문화평론가 L씨의 말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

권순활<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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