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양주석/구두병원서 만난 「구두쇠 제자」

입력 1998-01-16 20:13수정 2009-09-25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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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구두는 복숭아뼈 아래 뒷굽이 한쪽만 닳아 걸을 때마다 옆으로 넘어질듯 불편하다. 닳은 뒷굽 안으로 작은돌이 박혀 걸을 때는 달가닥거리거나 아스팔트에 갈리는듯한 불유쾌한 소리가 나기 일쑤다. 아내와 함께 외출할 때마다 “구두를 바르게 신어보라”는 성가신 잔소리를 들어야 한다. 발을 떼면서 아무리 발바닥 전체로 힘을 고르게 나누려 해도 뒷굽은 기우뚱하게 닳는다. 구두 한켤레를 사면 뒷굽을 몇번이고 갈아야 하니 남보다 훨씬 비싼 구두를 신는 셈이다. 얼마전 또 뒷굽을 갈려고 아파트에서 멀리 떨어진 구두병원으로 갔다. 비좁은 구두병원의 막대의자에 걸터앉아 수선을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한 젊은 주부가 핸드백 가방 슬리퍼 등을 수북이 싸들고 오더니 수선을 부탁하는 것이 아닌가. 흔히 아파트에 사는 주부들은 유행이 지났다고 새로 사거나 조그만 고장에도 버리기 일쑤인데 주섬주섬 싸들고 왔으니 기특하기만 했다. 수선을 맡기고 돌아서다가 얼굴을 마주치게 됐는데 느닷없이 “선생님” 하고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여고시절의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수업시간은 물론 조회 종례 때마다 근검절약을 강조하던 나의 당부를 졸업하고도 실천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선생님께 따뜻한 차라도 대접하겠다고 옷소매를 잡아끄는 것을 구두병원 앞의 자판기 커피로 대신했다. 양주석(충북 청주시 상당구 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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