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사태가 터진 직후인 1월24일 국민회의는 청와대 2명, 신한국당 2명이 사건의 열쇠라며 「2+2」설(說)을 제기했다. 자민련은 「젊은 부통령」이 관련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구체적 증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그 다음날 신한국당은 『증권정보류의 정치공세는 경제회복에 도움이 안된다. 검찰이 내사에 착수했다고 하니 마녀사냥식 정치공세는 자제돼야 한다』(金哲·김철대변인)는 첫 공식반응을 보였다. 그 후에도 연일 「유언비어의 괴뢰」 「인민재판」 「막가파식 정치」 등의 표현으로 야당의 의혹제기를 비난했다.
그러나 30일 신한국당은 돌연 야당인사 8명(익명)의 연루의혹을 공식제기했다. 31일에는 『구체적인 자료를 갖고 있다』며 다시 으름장을 놓았다. 신한국당 스스로 기존입장을 뒤집은 것이다.
여야의 이런 응수는 정치가 얼마나 황폐해졌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특히 신한국당의 태도는 중대한 문제를 내포한다.
우선 집권당의 의혹제기는 야당의 주장과 달리 검찰수사에 직접적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간과했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검찰에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 한 게 아니냐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30일 신한국당 지도부에 배포된 「한보부도사태 유언비어 종합」이라는 문서내용과 신한국당이 제기한 의혹이 똑같다는 점도 석연치 않다. 신한국당이 이 문서에 근거해 의혹을 제기했다면 이것이야말로 「증권정보류의 정치공세」 「유언비어의 괴뢰」가 된다.
신한국당은 31일 盧泰愚(노태우)씨 비자금사건 수사과정에서 姜三載(강삼재)사무총장이 제기했던 국민회의 金大中(김대중)총재의 「20억+α」설을 다시 거론했다. 여권(與圈)에서 대표적인 「맞불작전」 성공사례로 꼽히는 이 설을 이 시점에 다시 거론한데서 신한국당의 속내가 드러난다.
당시 강총장은 증거를 갖고 있는 것처럼 의혹을 제기했으나 검찰은 이를 밝혀내지 못했고 강총장의 명예훼손고소사건은 무혐의처리됐다. 법조계에서는 집권당 간부가 검찰의 위상을 실추시켰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이번 신한국당의 의혹제기도 검찰수사에 혼선을 빚고 국민적 의혹만 더욱 증폭시킬 우려가 있다.
이번 진흙탕 싸움은 야당이 먼저 걸었다. 그러나 야당이 한다고 해서 한술 더뜨는 것은 집권당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임 채 청<정치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