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236)

  • 입력 1996년 12월 7일 20시 11분


추락하는 것은 평화롭다〈9〉 투서는 바로 이튿날부터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우편물을 갖다 주면서 조교는 어쩐지 내 눈길을 피하는 것 같았다. 조교가 나간 뒤 우편물을 뒤적이던 나는 기다리던 것이 빠져 있음을 알았다. 내 원고가 실렸을 학회지가 늦어도 지난 주에 도착해야 했던 것이다. 혹시 빠뜨린 우편물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문을 열었을 때 나는 후닥닥 흩어지는 발소리를 들었다. 복도에서 다른 과 조교들과 수군거리고 있던 조교는 얼굴이 빨개지며 『네, 교수님?』하면서 다가왔다. 나는 그들의 흥미진진한 화제를 장본인이 나타나 중단시켰음을 알았다. 오후에 박지영이 와서 나에 대한 투서 문제로 곧 교수회의가 열릴 거라는 소식을 전했다. 『조금 전에 문창과 김선생 만났는데 거기에도 벌써 소문이 돌았나봐요. 사생활인데 설마 학교측에서 이래라 저래라 참견하겠느냐고, 그러면서도 강선생 걱정 많이 하더라구요』 『내 걱정을요?』 박지영의 목소리가 조금 뾰족해졌다. 『김선생이 원래 강선생 생각 많이 해주잖아요. 나한테도 몇 번이나 그러던데, 강선생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질투날 정도예요』 사생활이 문란하다고 패대기를 당하는 판에 그것이 다 매력적이어서 생긴 일이라니. 말의 진위는 그만두고라도 이 마당에 그걸 위로라고 하고 있나. 확실히 박지영에게는 맹한 구석이 있다. 그러나 그 다음 말은 그녀다운 권력욕을 드러내 보여주었다. 『근데 사실 김선생이 그런 걱정 하는 거, 다 겉 다르고 속 다른 걸 거예요. 자기도 재단쪽에 줄을 대서 들어온 처지인데 이런 일에 누구 편이겠어요』 박지영은 무슨 게임처럼 「편」이라는 말을 쓴다. 마치 그녀 자신이 내 편임을 강조하기라도 하듯이. 교수회의는 며칠 뒤에 열렸다. 이번에도 박지영이 내게 그 회의의 자초지종을 전해 주었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해요. 다들 재단측의 의중을 알기 때문에 알아서 기는 거 있죠』 『무슨 말이에요?』 『투서 내용과 아무 상관 없는 얘기도 많이 나왔어요. 강선생이 평소에 교수의 품위를 안 지킨다는 둥, 불성실하다는 둥, 실력이 없다는 둥. 사람들이 어쩜 그럴까』 <글:은 희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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