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담배를 팔면서

  • 입력 1996년 11월 10일 20시 22분


국민건강법이 시행되고부터 담배판매를 하는 소매인으로서 가끔 웃지못할 일을 겪곤 한다. 분명 10대 청소년으로 보여 담배판매를 거절했다가 사람 똑똑히 보라며 험악한 인상으로 주민등록증을 꺼내보일 때는 그래도 낫다. 책가방을 숨긴 채 담배를 팔라고 고집하다 거절당하고 돌아서는 10대들은 십중팔구 가게문을 나서기가 무섭게 입에 담지못할 상소리를 내뱉는다. 지난 일요일만 해도 그렇다. 『라이트 세갑만 주세요』라며 가게로 들어서는 중3쯤된 소년은 분명 우리 마을 아이는 아니었다. 『미성년자 한테는 담배 안 판다』고 해도 소년은 아버지 심부름이라며 못을 박은듯 서 있었다. 그럼 집으로 전화해서 확인이 되면 주겠다고 했더니 친척집에 놀러와 있기 때문에 번호를 모른단다. 난감한 마음을 누르며 집에가 다시 전화하고 오라니까 대뜸 욕설과 함께 가게문이 부서져라 밀어붙이고 나가 버린다. 손님은 계속 오고 속상한 마음을 꾹 눌러가며 조금 있으려니까 또 다른 10대 소년이 가게로 들어섰다. 『오마샤리프 한갑 주세요』라는 소리에 또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몰라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우리집에선 미성년자에겐 절대 담배를 안판다고 했다. 그 소리에 소년은 부끄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목례를 하고 나갔다. 그 소년은 정말로 심부름을 온 소년이었다. 곧 중년신사 한분이 가게에 들어서며 『아이구 죄송합니다. 제가 깜빡 잊고 아이에게 담배를 사오라고 했습니다. 오마샤리프 한갑 주십시오』라고 했다. 비록 구멍가게를 하는 아줌마에 불과하지만 모든 청소년들이 내 자식같아 결코 그들에게 담배를 팔 수는 없다. 허 정 분 <경기 광주군 실촌면 하열미리 열미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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